화장품 전면에 점자를 새긴 이퀄베리 화장품. /이퀄베리 제공

목이 말라 자판기에서 사이다를 뽑으려고 하는데 자판기 속에 온통 ‘음료’라고만 적힌 캔만이 가득하다면 누구나 화가 날 것이다.

지난달 음료수 캔의 점자 표기에 ‘음료’라고만 적혀 있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시각 장애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서울여대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에는 연세대, 건국대, 이화여대 등 9개 대학이 참가했다. 시각 장애인들은 콜라, 사이다 등 음료 종류라도 알기 위해 생산 기업에 점자를 요청했지만 제작비의 이유로 거부당해왔다고 한다.

법적으로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지난 2015년 국회에서 발의된 ‘의약품, 화장품, 건강 기능 식품 등의 점자 표기 의무화 법안'이 폐기되었고, 올해는 의약품 만에라도 점자 표기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이다.

이것은 매일같이 사용하는 화장품도, 치약도, 핸드크림도 마찬가지이다.

화장품회사 이퀄베리는 시각 장애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공감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화장품에 점자로 제품명을 새기고 제품별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패키지를 채택해 시각 장애인 친화적 화장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퀄베리의 김훈 대표는 점자를 담은 화장품을 만들게 된 이유에 대해 “처음엔 그저 ‘좋은 화장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다”라고 답했다. ‘좋은 화장품’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화장품을 만들어나갔고 화장품을 담을 패키지를 찾던 도중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해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는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도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이다.

시각 장애인 부모가 열이 나는 자녀를 위해 해열제를 먹여야 하지만 구분할 수 없는 패키지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사례를 접하면서 ‘패키지에의 점자표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물론 점자 화장품을 만들기까지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점자 화장품은 제조에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나중에 번창해서 여유가 생기면 하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용 화장품이라고 오인할 것 같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 선보인 이퀄베리의 점자 화장품은 총 201명이 1029만3,777원의 후원을 하면서 출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퀄베리의 펀딩을 접한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분들이 화장품이나 생필품을 어떻게 쓰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근데 이번 이퀄베리의 펀딩을 통해 어려움을 깨달았고 큰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공감을 보내왔다. 김 대표는 이런 공감들을 통해 “소비자들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몰랐던 것일 뿐, 사회소수를 차별하지 않는 상품을 쓰고 싶어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며 “앞으로 이퀄베리의 행보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라고 확신했다.

10년 뒤 이퀄베리의 목표에 대한 질문에 김 대표는 “화장품으로 시작한 이퀄베리가 10년 뒤에는 화장품 회사가 아니길 바란다”라고 답했다. 화장품을 비롯해 일상 용품, 주방 용품, 가구, 의류 등에 걸쳐 시각 장애인뿐 아니라 다른 많은 불편을 가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는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기업이 되고 싶다는 희망을 비췄다.

김 대표는 "이퀄베리의 점자 화장품은 시각 장애인들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029%의 달성률을 보인 이퀄베리의 펀딩. /이퀄베리 제공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