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영 칼럼]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억하며...
[박준영 칼럼]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억하며...
  •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 문화평론가
  • 승인 2017.12.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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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무비


프랑스혁명의 비극적인 아이콘인 루이 16세의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다운 모습을 연출한 프랑스혁명은 결국 전제왕권의 국왕과 왕비를 단두대에 올려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

이 비극의 한복판에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후 영화, 문학,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변주된다. 그만큼 서사적 비극과 극적 드라마틱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대부’의 감독인 코폴라의 친 딸 소피아 코폴라가 제작, 기획, 연출한 영화다. 소피아는 우리에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맨 먼저 알려졌고 이후 여성의 시각으로 야심차게 만든 영화가 ‘마리 앙투아네트’다. 여성 천재 감독이 제작했다고 하여 꽤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오스트리아의 공주였던 마리(커스틴 던스트, 영화 스파이더맨의 여주인공으로 낯이 익다)가 프랑스 왕가와 정략결혼을 맺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평소 애지중지하던 강아지를 뺏기자 온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철이 없었던 그녀. 그녀 나이 불과 15살. 루이 16세와의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일거수일투족은 왕실의 모든 사람에게 오픈되었고 세간의 관심은 오직 수태하여 득남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 프랑스 왕실의 극에 달한 사치를 영화는 여과 없이 차분하게 보여준다. 황태자 비의 기상 시간에 맞춰 모든 귀족 부인들이 침대 앞에 도열해 있고, 서열에 따라 황태자 비에게 옷을 입혀주는 순서가 정해진다. 심지어 그녀가 사용하는 부채는 오전과 오후가 달랐을 정도다.

성적 자극에 둔감했던 루이 16세는 아무리 교태를 떨어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우여곡절 끝에 옥동자를 낳았고 주위에서는 드디어 부르봉 왕가를 잇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어찌 보면 평범했던 왕비의 인생은 여기까지였다. 불행히도 격변의 중심에 놓이게 되는데 왕비의 나이 겨우 18세다.

18세기, 인류는 자신의 천부 권리를 알게 되고 당연히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적 토대 덕분에 최소한의 유혈로 그것을 확보 해 나갔고 미국은 청교도적 이념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지렛대 삼아 자유와 참정을 쟁취하고 있었다.

루이16세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독립전쟁에 무리하게 세수를 퍼부었고 이는 프랑스혁명의 결정적 도화선이 되고 만다. 영화에서 앙투아네트의 오라비 요제프 2세는 그녀에게 좀 더 백성들에게 관심을 갖고 도박 빚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그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되잖아요?’ 하는 말도 이쯤에서 나온 에피소드다. 그러나 사실 역사가 요동치던 이 시기에 어느 누가 프랑스 왕비였던들 피해 갈 수 있었을까?

민중들은 혁명의 희생양이 필요했고 제단에 바쳐 질 먹이감을 찾고 있었다. 엄중한 시기에 철없는 어린 왕비가 있었을 뿐이라 말 할 수도 있다.

영화가 개봉되자 찬 반 양론이 갈렸다. 몰(沒)역사적 영화라는 주장과 그저 철없는 왕비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감흥을 담담히 그려낸 수작이라는 의견이 그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는 따로 있는 듯 하다.

무릇 지도자라면, 사회를 이끄는 리더라면 시대의식과 역사인식은 받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디.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그 순간에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한가로이 폴로 경기나 하고 있을 건지, 시대의 흐름과 가치를 파악하고 먼저 움직이고 실천 하여 역사적 흐름과 궤를 맞출 건지는 호불호 논쟁과 별도로 현재의 우리에게 이 영화가 일깨워 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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