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미월 기자.

[류미월 기자] 쇼핑가에 롱패딩 열풍이 불고 있다. 스포츠, 아웃도어, 골프 브랜드뿐 아니라 일반 패션 브랜드까지 수십 개 업체가 뛰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 집 옷장을 열어보았다. 롱은 아닐지라도 반코트 길이의 패딩은 한두 개 있다.

롱패딩은 운동선수들이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입는 옷이다. 종아리까지 감쌀 정도로 길어서 ‘이불 패딩’이라고 불린다. 롱패딩을 사려고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보도를 보면서 한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지난 설날에는 조카가 아이들을 데리고 큰집으로 인사를 왔다. 한복 입은 아이들이 절하고 세뱃돈을 받고는 이벤트처럼 아이돌 흉내를 내며 춤추고 노래하며 재롱을 떨었다. 그중 큰 녀석이 초교에 입학한단다. 조카 말로는 책가방을 폼 나는 걸로 사줘야 애들이 기가 안 죽는데 백화점에 가보니 찜해놓은 가방이 품절이란다. 일본 제품인데 가격이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는 말에 놀랐다. 비싸지만 꼭 사주고 싶어서 마침 일본 여행을 간 친구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자녀에게 최고의 제품을 사주고 제 자식이 그 상품을 지녀야만 부모 또한 최고의 부류에 드는 것처럼 대리만족해서일까. 언제부터 사람을 본모습이 아닌 물질로 판단하는 세상이 돼버렸는지 씁쓸하다.

한때는 중고생들이 유명 운동화와 유명 파카를 안 입으면 낙오자처럼 부모를 조르더니 이제는 초등생의 책가방까지 그 대열에 섰다. ‘노스 000 신상 패딩’은 일명 ‘등골 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만큼 비싼 상품을 일컫는 말)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게다가 ‘롱패딩’ 열풍이라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예로부터 고향의 굽은 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못난 자식이 부모를 섬긴다는 말이 있듯 쭉쭉 뻗고 잘생긴 나무는 쓰일 곳이 많아서 누가 채가도 채간다. 잘 나가는 자식 또한 제 앞길 챙기기에 바빠서 부모형제를 돌볼 겨를이 없다. 굽은 나무는 소의 등에 얹는 장식인 ‘길마’를 만들 땐 없어서는 안 되는 재료로 쓰인다지만, 자식 뒷바라지에 등골이 휜 부모의 굽은 등은 유용한 데가 있으려나?

물신(物神)주의가 확산할수록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철학을 지키며 정신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좋다. 남들이 하면 우르르 따라 하는 획일성은 좋기만 한 걸까. 창업하면 왜 대부분 치킨집 아니면 커피숍일까? 남과 차별화되는 전략으로 깊이 고민해보고 나만의 길을 가면 안 되는 걸까?

진정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얼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사회적 관습과 유행 따위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안 되는 건지.

자연스럽게 휘며 가지가 뻗어 나가는 나무는 자연미를 주며 쓰일 곳도 있고 보기에도 좋지만, 외부의 압력에 의해 억지로 휘는 것은 무리가 따르고 병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인간의 삶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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