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아름다운 석양 / 최혜선 기자.

[최혜선 기자] 말로만 들었던 소록도에 갔다. 섬 모양이 사슴을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는데 모양만 사슴을 닮은 게 아니라 실제로 사슴이 많이 살고 있었다. 숲길을 지날 때마다 여러 마리 사슴들이 지나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슴이 뛰어들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자의 당부가 있을 정도로 사슴이 많았다.

소록도 숲길은 사람들의 바쁜 일상이 있는 길이 아니고 여느 등산로처럼 마냥 자연을 즐거워하는 길도 아니다. 과거를 안고 가는 길이다.

석양에 비친 단풍색이 너무 고와서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가 노인 두 사람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주민인 듯했다. 말없이 조용히 걷는 모습이 이 길의 일상처럼 보였다. 이제는 큰 아픔 없이 하루를 지내는 모습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과거의 힘들고 아프고 서글픈 일들이 모두 어제의 일이고, 이제는 폭풍을 지나 평온한 일상이면 좋겠다. 하지만 고통은 아직도라니 먹먹하다.

흔히들 알고 있듯이 소록도는 특별한 공간이다. 지난 1916년 일본 제국주의가 한센병 환자를 집단 격리·수용하기 위해 섬 전체에 수용 시설을 만들었다. 외부와는 차단되어 섬에서만 쓰는 화폐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니 소록도의 어느 나무나 사연이 없는 나무가 없다고 한다.

환자들의 아픔뿐 아니라 고달픔과 그리움이 섞인 소록도의 숲이다. 배고픔과 강제 노역의 고통을 견디며 모진 병마와 싸워 온 한센 환자들의 삶이 있는 숲이다. 그런 슬픔을 알고 있는지 소록도의 석양은 왜 이리 저린지 모르겠다.

이런 소록도에 천사 이야기가 있다. 40여 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보살피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주인공이다. 환자들을 돌보며 건강이 나빠지자 치료받고 와서 다시 환자들을 돌보았다. 이해인 수녀는 이 두 천사의 삶을 푸른 바다라 하였다. 상처받은 이들을 조건 없는 사랑으로 끌어안은 넓은 바다라는 말에 참으로 숙연해지며 나를 돌아본다.

소록도의 유자나무는 특별하다. 작고한 신정식 원장이 앞날을 위해 유실수 단지 조성을 강행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열매로 환자들의 생활에 보탬을 주고 있다니 유자나무가 예쁘다.

국립소록도병원과 한센병박물관을 제외한 다른 곳은 차로 둘러보았다. 서생리는 처음으로 한센 전문 병원인 자혜의원이 설립되면서 본관이 자리 잡은 곳이다. 작년 말부터 이곳에 마을 옛터 보존 사업을 하고 있다. 서생리는 지난 90년대 초까지 병원 주변에 주민들이 생활했으며, 지난 20년대 지어진 벽돌 건물이 남아 있다. 지금은 환자들이 거주하지 않고 특별한 관리 없이 방치된 건물은 여기저기 붕괴하거나 훼손된 모습이다. 지난해 말부터 보존 사업을 시작하였으니 100년에 걸친 한센병 환자들의 역사와 기억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재탄생하리라 본다.

정호승 시인의 '소록도에서 온 편지'처럼 소록도 마음으로 동백꽃을 기다린다.

'소록도에서 온 편지'(정호승)

"팔 없는 팔로 너를 껴안고/발 없는 발로 너에게로 간다./개동백나무에 개동백이 피고/바다 위로 보르말이 떠오르는 밤/손 없는 손으로 동백꽃잎마다 주워/한 잎 두 잎 바다에 띄우나니 받으시라/팔 없는 팔로 허리를 두르고/발 없는 발로 함께 걷던 바닷가를/동백 꽃잎 따라 성큼성큼 걸어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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