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학년 A씨, 희망 기업의 채용 공고가 뜨자 사진관으로 달려가 취업사진을 찍는다. 정장은 우선 사진관을 통해 해결했다지만, 예상치 못한 서류 합격으로 면접을 보러가게 된 A씨. "앞으로 면접 보러 갈 일이 많을텐데 이참에 정장 한 벌 구매해야겠다."며 문닫기 직전의 백화점에서 여러 벌 입어보지도 못한 채로 그나마 괜찮아보이는 정장을 한 벌 구매한다.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정장이 필요한 사람과 안 입는 정장이 많은 사람. 살면서 정장을 착용해야하는 순간은 꽤 많다. 직장 출근을 제외해도 사진 촬영, 면접, 졸업식, 결혼식, 장례식, 연주회 등이 있다. 정장이 필요한 사람의 경우, 취업 준비생이라면 더더욱 정장이 낯설다. 이들에게는 357,000원이라는 정장 구입 평균비용은 물론 종류, 치수 등 정장의 모든 것이 낯설다.

이러한 청년구직자들을 기다리는 옷장이 건대입구역 1번 출구에 위치해있다. 인생선배들이 기증한 안 입는 정장을 5만원 이내로 빌려주는 열린옷장은, 대여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열린옷장은 누가 채웠을까?

기증받은 정장들이 열린옷장을 채우고 있다. /열린옷장 제공

옷장이 처음 문을 연 2011년, 당시 직장인이었던 열린옷장의 한만일 대표는 적은 기증량을 메꾸기 위해 본인의 정장을 직접 기증했다고 한다. 그러나 열린옷장이 각종 언론매체에 소개되면서, 한 달 기준 10~15박스 들어오던 기증이 최근에는 한 달 기준 대략 100박스로 증가했다. 기증자는 개인과 단체로 나눌 수 있는데, 개인의 비중이 약 90%를 차지한다.

기업의 경우, 한국국제협력단(KOICA), 스펙업, 삼성SDI, 신한카드, KEB하나은행이 정장을, 성수동 맞춤수제화 브랜드 맨솔이 구두를, 가죽가방 브랜드 LOTUFF는 가방을 기증했다. 하지만, 기업의 자발성과 동기를 생각해본다면, 기업 기증의 증가 또한 기대해볼 만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열린옷장에 먼저 연락해 기증을 문의하였으며 그 동기 또한 단순 물품 기증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한카드의 경우, 넥타이를 매지 않는 '노타이' 제도 시행에 맞춰 기증을 진행하였다. 기증을 통해 보다 자유로운 사내 복장문화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LG전자에서 기증한 스타일러 이외에도 다리미, 책상, 의자 등의 용품들이 기증품이다.

열린옷장은 누가 관리할까?

공유가치를 실현하는 열린옷장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연평균 1,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자신들의 시간이라는 자원을 열린옷장에 흔쾌히 기증하고 있다. 학생 자원봉사자가 대부분으로, 단기봉사로 시작된 봉사가 열린옷장에서 만든 추억들로 장기봉사가 되는 경우 또한 많다고 한다. 기증 받은 정장의 치수를 측정하고 대여자의 신체 치수 또한 측정하는 일 등을 하는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점점 더 중요해질 예정인데, 현재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개인의 신체 조건에 맞는 정장을 제시하는 시스템을 구축중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정장을 대여한 사람들의 신체 치수가 평균적으로 어떠한지 분석해 훗날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맞춤 정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열린옷장의 목표다. 이는 열린옷장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대여 희망자들의 대여 또한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열린옷장은 왜 가능할까?

정장과 이야기의 선순환 /열린옷장 제공

대여자들은 열린옷장에서 정장만을 대여하지 않는다. 기증자는 정장과 함께 이야기 또한 기증하는데, 이 이야기가 해당 정장 대여자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기증자의 응원에 힘입어 대여자는 용건을 무사히 본 후 기증자에게 보내는 감사편지와 함께 정장을 반납하게 된다. 정장과 이야기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두 개인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열린옷장의 정장 반납율은 매우 저조한데, 미반납의 경우, 악의가 아니라 단순히 정장 반납일을 잊은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이에 대해 열린옷장은 대여자에게 반납알림문자를 전송하고 있다.

또, 열린옷장은 정장대여 사업의 수익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노숙인 재활 프로그램 "소울푸드 프로젝트", 소외 청소년 공연 "세상을 품은 아이들" 그리고 국립재활원 "리마인드 웨딩"의 의상을 후원하며 노숙인 다시 서기 센터인 비전트레이닝센터에도 의류를 기부하고 있다.

"중요한 자리에 어떻게 남이 입던 옷을 입고 가?"라던가 "사람들이 빌려간 정장을 반납하지 않으면 어떡해?" 등의 걱정은 이미 활짝 열린 옷장 문을 닫기엔 역부족이다. 열린옷장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취업준비생과 다른 이유로 정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운영되는 "열린사진관"을 통해 정장 사진을, 바비 브라운이나 어퓨 등의 화장품 브랜드와 함께 정장 메이크업을 지원함으로써 정장 대여자들이 정장에 좋은 기억을 심을 수 있게 한다. 새해를 맞아 옷장 정리를 하게 될 연말, 공유의 힘으로 활짝 열린 옷장 속으로 더 많은 정장과 이야기가 기증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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