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영 기자.

[김애영 기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돼 이를 기리는 성당을 세운 스페인의 도시이다. 이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 끝 도시를 많은 순례자가 찾았고 그들이 걸은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즉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부른다. 까미노란 ‘길'을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산티아고를 가는 길은 여럿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길이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900㎞에 이르는 프랑스 길이다. 지난 1993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원래 성지를 찾는 순례의 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길 자체가 순례의 대상이 되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걷는다.

그 길을 아버지께서 걷겠다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올해 10월에 80세가 되셨다. 고2 때 한 집안의 가장이 되시어 오롯이 그 무게를 짊어지셨고 지난 몇 년간은 아픈 아내를 돌보느라 척추가 휘어버린 이제는 왜소한 노인이 되신 분이 홀로 걸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처음 걸으시겠다고 하셨을 때, 나는 그 길이 서울-부산을 3번 갈 만큼의 긴 거리인지도 몰랐고, 산맥을 통과하는지도, 가끔 들개가 출몰하고, 인적 드문 곳을 걸어야 하며, 매일매일 잠자리를 바꿔야 하는지도 몰랐었다. 그런데도 ‘혼자’ 가신다는 것만으로도 반대했고 내년에 같이 가시자고 했다. 맞벌이하는 자식들은 내년이라도 직장에 매여 함께 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고3 수험생을 뒷바라지하고 홀가분하게 따라나설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였다. 어머니가 병이 깊어지면서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라는 걸 깨달았고, 팔순이신 아버지를 친인척도, 보호자 없는 나라에 가시게 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른 노인의 체력으로는 한시도 미룰 수 없다고, 가서 생신날에도 걸으시면서 자신이 맞이한 팔순의 의미를 찾으시겠는 아버지를 끝내 말릴 수 없었다. 4년이 넘은 파킨슨병과 치매로 투병하는 어머니를 병간호하면서 가장 즐겨보신 프로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였음을 잘 알기에, 그리고 두려워 피한다고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거란 생각도 했다.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전혀 못 하실 뿐만 아니라, 귀가 어두우시고, 정보의 바다인 스마트폰을 전화를 걸고 받는 것으로만 사용하는 분이신데,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이라니....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곧 80대가 될 70대의 노인(80)이라고 하면 모두 노망났다고 할 거 같았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이 무모한 여행의 처음 시작인 며칠만이라도 누군가 동행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다. 여러 날이 흐른 뒤 딱 한 분이 대답했다. 그분의 도움으로 파리에서 생장까지의 기차표도 구했고, 처음 이틀을 함께 하시게 됐다.

스페인어, 부엔 까미노(Buen Camino)란 말 그대로는 '좋은 길'이지만 '좋은 여행이 되길..., 당신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길...”이란 축복의 말이라 한다. 그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아버지는 혼자 걷기 시작하셨다. 이른 새벽, 아직 깜깜한 길을 나서서 갈아입을 옷가지와 침낭 정도로 줄였지만 8kg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낯선 길을 그저 걷고, 먹고, 자도 그렇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대자연.

그래서 아주 힘겨우셨나 보다. 2주일도 채 못 된 어느 날, 모르는 이에게 아버지가 핸드폰을 잃어버리셨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 아버지가 진짜 낯선 땅에 혼자 헤매시게 됐구나. 공포가 밀려왔다. 혹시나 해 여행 카페에 글을 올렸다. 만약 머리 하얀 팔순 노인을 만나거든 핸드폰을 한 번 빌려 달라, 안부 문자 한 통 하실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나는 집 주변에서도 식구들을 우연히 만나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도 안 된다. 그 긴 거리에서 하나의 경로가 아닐 텐데, 만나면 문자 한 통 보내게 핸드폰 빌려 달라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허공 중에 했다.

기적일 것이다. 거의 매일 낯선 이들을 통해 연락을 받았다. 때론 몇 장의 사진까지...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헤어지고도 아버지가 까맣고 비쩍 마른 채 33일 만에 집에 오신 날까지 안부를 물었다. 물론 여행 카페의 많은 이들도 같이 걱정해줬다. 아버지와 일면식도 없었던 이들이 늙고 약한 한 사람을 그저 염려하고 격려했고, 마침내 기뻐했다.

아버지는 길을 나선 지 3일 만에 “세상에서 집이 가장 편한 곳”이란 것을 절실히 느끼셨고, 정말 여행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각국의 사람까지 모두 응원했기 때문에 간신히 버티고 버텨 완주하셨다고 했다. 네덜란드의 60세의 한 여자는 자신이 30년이 지나도 당신을 기억하겠다고 했단다. 그리고, 우연히라도 여러 차례 만난 이들은 멀리서도 뛰어와 안아주며 용기를 주었다고 했다. 인종도, 국적도, 직업도 다른 이들이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완주하셨고, 아버지의 귀가 소식에 많은 이들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홀로였지만, 혼자가 아닌 길, 그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 만이 아닐 것이다. 우린 사실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하루하루 무거운 짐을 지고 각자의 길을 걷는 연약한 우리 모두에게 서로 축복을 보내자. 그 축복이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부엔 까미노!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