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영 기자.

[김애영 기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미하일 천사는 일종의 저승사자였다. 신의 명령에 따라 팔딱거리는 심장을 가진 사람의 생명을 거둬 가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그런 그가 신의 명령을 거역하자 신은 그를 인간으로 만든다. 인간 미하일은 알몸으로 한겨울 밤 길거리에 내쳐진다. 이미 사람이 되었기에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추위에 떨고 배고픔과 두려움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를 길 가던 구두장이가 구해 준다. 미하일은 구두장이가 벗어준 외투를 입고 낡은 신까지 얻어 신은 채 구두장이의 조수가 되어 얹혀살게 된다.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내가 “어디서 저런 거지를 데려왔냐”라고 쏘아대자 몸을 움츠렸지만, 그런데도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준 데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가죽을 재단하고 밑창에 풀을 묻혀 신을 만든다.

어느 날인가, 풍채가 멋지고 권세가 대단한 신사가 몇십 년을 신어도 끄떡없을 신을 만들라 했을 때 장례식에 시신에 신길 신으로 재단해 버리는 실수(?)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신을 찾으러 오겠다는 날짜에 신사가 이미 죽어 미하일은 실수에 대한 책망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천사였던 알몸의 미하일이 묵묵히 구두를 만들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신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한 쌍둥이 여자아이들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하일이 신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자신이 거둬야 할 영혼이 아이 엄마였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오두막의 초라한 침대에서 갓 태어난 쌍둥이를 끌어안고 거친 숨을 이어가던 아이들의 엄마가 간절히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불쌍한 고아가 됩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미하일은 차마 목숨을 거두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천사에서 강등돼 인간이 됐다. 그런 미하일 앞에 그날의 여자아이들이 나타난다. 미하일이 못 한 일을 신이 직접 했기에 아이들의 엄마는 이미 숨을 거두었지만, 착한 이웃의 소중한 딸이 되어 잘 자라다가 미하일이 일하던 구둣방에 구두를 맞추러 온 것이다. 미하일은 그제야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깨닫게 된다. 몇십 년 동안 신을 수 있는 신을 맞추러 오지만 그것이 완성되기도 전에 죽을 수밖에 없는, 생사의 결정권이 없는 인간이 혹독한 추위, 혹독한 배고픔, 그리고 그보다 혹독한 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 대한 사랑, 배려, 헌신하기에 그리고 이를 받기에 산다는 것을 말이다.

지난 주말 강원 강릉시 석란정에서 화재 진화 중에 고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가 순직했다. 고 이 소방경은 90대의 노모와 아내, 자식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으며, 고 이 소방교는 부모와 여동생의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K-9자주포 사고로 투병 중에 사망한 고 위동민 병장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이었으며, 올여름 폭우 피해 복구 작업 중 과로사한 도로 보수원 고 박종철씨는 중2 딸 아이의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빠였다. 모두 신의 뜻에 따라 주어진 시간이 달랐지만, 너무도 아깝고 안타까운 목숨이었다.

이들의 희생으로 소방관의 처우 개선,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재발 방지, 적절한 노동 강도와 환경 조성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동감하고 지지한다. 거기에 덧붙여 유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와 알맞은 복지 혜택이 더해지길 바란다. 어쩌면 이 소방경과 이 소방교, 위 병장, 박씨는 그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이 떠난 뒤의 가족들안위를 걱정했을 것이다.

‘아무리 거친 화염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에 따라/ 내 목숨을 드릴 때/ 당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미국의 소방관인 스모키 린의 시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한 구절이다. 이제 우리가 유가족의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이는 신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의 할 일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