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문구 업체들은 제품 디자인에 차별을 조장하는 문구를 이용하고 있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 제공

‘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무색해지는 한 문장이다. 공부는 내가 하는데 왜 남편의 직업이 바뀌는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10분 더 공부해서 바뀔 직업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10분 더 공부한 보상이 개인의 성공이 아닌 미래 남편의 직업으로 나타난다면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화장해서 연애할래 맨얼굴로 쏠로 될래’라는 문구는 또 어떠한가. ‘화장=연애’, ‘민얼굴=솔로’라는 공식을 누가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장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던져준다.

이렇듯 다소 구시대적인 발상에 가까운 문장들이 문구 제품의 디자인에 쓰이자 많은 네티즌이 분노하고 있다. 특히 광주의 시민 단체들이 모여 구성된 혐오문화네트워크가 차별 조장 상품 판매 현황을 최근 조사한 결과 51개의 문구류가 적발되었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는 지난 19일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차별을 조장하는 상품을 만드는 업체에게 차별 문구를 담은 디자인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는 문구 업체 4곳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며 “일부 문구류 전문 회사는 개성 있는 문구와 캐릭터를 활용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상품은 심각한 차별을 조장 요소를 담고 있으며, 해당 상품을 주로 사는 청소년들에게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식을 심어주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일부 문구 제품이 인권 침해 요소를 담고 있다는 지적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시민모임'은 지난 2015년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어머! 얼굴이 고우면 공부 안 해도 돼요’ 등의 문구를 상품 디자인으로 사용한 A업체에 대해 인권위에 진성서와 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진정서 제출 이후 관련 기사와 네티즌의 반발이 쏟아지자 A업체 대표는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지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인권위는 A업체가 사과문을 게재하고 문제의 상품을 회수한 점 등을 고려해 기각결정을 내렸다. 그런데도 이 업체는 유사 형태의 차별 조장 상품을 지속해서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는 이에 대해 “이러한 행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다하지 않은 차별 행위”라며, “회사는 인권 문제를 스스로 고쳐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일부 회사는 이러한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번 진정서 제출을 시작으로 일인시위 및 캠페인, 패러디물 제작 및 전시, 민사소송, 불매 등 각종 활동을 병행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혐오문화대응네트워크는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모임, 광주여성민우회, 광주인권지기 활짝, 노동당 광주광역시당, 광주 녹색당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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