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이사센터는 일본의 이사 전문업체다. 패밀리마트는 일본 전 지역에 18,000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스노우피크는 아웃도어 전문 업체다.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을 연결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다. 일본의 국민 모두에게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는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재해다. 재난이 발생할 경우 이들 기업을 포함한 17개 기업과 6개 비영리조직은 재난대응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선다. 스노우피크는 텐트와 쉘터 등 피난생활 초기에 필요한 물품을 재해지역 주민에게 제공할 예정이다. 전국에 직영점을 두고 있는 하트이사센터는 지원물자를 재해지역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맡게 되고, 각 점포를 연결하는 물류망과 물자를 지닌 패밀리마트는 재해지역의 복구에 투입된다. 각 기업이 가진 상품, 서비스, 자원이 빠른 속도로 정확하게 재해지역에 공급되어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지난 8월 31일 발족한 일본의 SEMA(Social Emergency Management Alliance)가 그 주인공이다.

SEMA의 운영도

재난대응과 복구를 위한 민간플랫폼,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SEMA를 제안한 이는 A-PAD(Asia Pacific Alliance for Disaster Management)의 오니시 대표. A-PAD의 카오리 씨는 SEMA의 기원을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 찾았다.

“2011년 대지진 이후 재난대응에 대한 모듈이 없는 현실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SEMA와 같은 개념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놀랍게도 5년이 지났지만 동일본대지진에서 느꼈던 문제점을 구마모토 지진 때 다시 느꼈습니다. 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SEMA에 함께 하고자 하는 기업과 비영리조직이 먼저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동일본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에서 노출되었던 재난대응의 허점은 재난지역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였다. 지진 당시 많은 기업들이 구호물품을 정부에 제공했다. 그러나 이 물품들은 현지에 제때에 도착하지 않고 현청에 쌓여 있었다. 같은 시간 일분일초가 아까운 현장에서는 물품의 공급부족으로 긴급구호와 대응에 애를 먹었다. 그런데 미디어에서는 창고에 물품이 쌓이다 못해 더 이상의 비축이 불가능한 상황을 보고 더 이상의 물자 지원은 필요하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러다보니 어떤 현장들에서는 피해민에게 물자가 제공되지 않았다. 하지만 SNS(Social Network Service)에서는 각 지역에 어떤 물품이 부족한지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정부에게만 물품을 지원하던 기업들은 지금까지의 방식이 가진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다.

정부는 체계적이지만 느리다. 일하는 방식도 재난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재해지역에 재해민 500명이 있을 때, 정부는 구호물품이 500개가 도착할 때까지 물품을 지원하지 않는다. 못 받는 사람이 생기면 형평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재해지역에서 경험을 축적한 민간의 비영리조직들은 400개라도 빨리 공급하는데 집중한다. 재해민이 500명이라고 해도 500명이 모두 물품을 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필요한 사람에게 제때에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SEMA는 이런 상황에 대한 솔루션입니다. 국가의 대응만을 기다리지 말고 더 빨리,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민간에서 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을 정부도 지지하고 있다. 내각부, 광역자치장회, 기초자치단체장회가 SEMA의 관계처로 포함되어 있다. 내각부는 서포터를 자처했다. 비영리조직과 정부 모두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 재난상황에 큰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기업, 비영리조직, 정부 모두에게 SEMA는 일종의 실험이다.

SEMA에 참여중인 기업들

SEMA는 콜렉티브임팩트(Collective Impact)의 한 예일 수 있다. 콜렉티브 임팩트는 복잡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조직과 개인들이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한 기업이나 단체, 개인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콜렉트브 임팩트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추조직이 필요하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모인 조직과 개인들을 연결하고 그 시너지를 창출하며 이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을 누군가 맡아야 한다. SEMA의 중추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SEMA에 17개 기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모두 재난시의 긴급 물자 제공에 동의한 기업들입니다. 현재는 야후재팬이 사무국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야후재팬은 인터넷 미디어를 가지고 있고, 상품서비스와 비영리조직을 위한 모금플랫폼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재난대응에 대한 강력한 열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영리조직은 6개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6개 조직이 모두 재난대응을 위해 특화된 조직은 아닙니다. 현재는 A-PAD에서 사무국을 맡고 있습니다.”

아직 SEMA는 걸음마 단계다. 그러나 재해가 발생하면 할수록 SEMA의 가치는 검증될 것이다. 우선은 각 조직의 담당자간의 비상연락훈련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이후엔 전용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중핵간의 연결을 지속하고, 긴급상황에 대응하는 훈련을 진행하는 등 전문성을 높여갈 계획이다. SEMA 내부의 활동 원칙을 만드는 것도 앞으로의 일이다.

“전국단위로 활동하는 조직들만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일하는 단체들이 가입을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재난은 지역단위로 발생하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각자의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비영리조직이 함께 할 때 SEMA의 재난대응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재난 대응에 있어 일본은 우리보다 수십 년은 앞서 있다. 그런 일본은 여전히 재난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군사긴장과 지진, 자연재해에 의한 위험도가 높아지는 우리를 되돌아본다. 앞선 실험까지 바라는 건 사치일지 모른다. 도대체 언제 재난 대응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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