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렬 코스리 교육본부 위원장.

[김정렬 코스리 교육본부 위원장] 어느 주말 서울 영등포여고 체육관에서 열렸던 영등포구청장배탁구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 위치를 잘 몰라 신길역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에게 영등포여고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 그는 청각 장애를 갖고 있었다. 그 젊은이는 대답 대신 손짓으로 열심히 가리켜주는데 필자가 볼 때는 영등포여고가 아닌 영등포역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는 필자의 입술 모양을 보고 영등포여고를 묻는 것을 영등포역을 묻는 것으로 잘못 판단했던 것이었다. 입술 모양만 가지고도 최선을 다해 남을 도우려 하다니 너무 고마웠다.

필자는 순간 옛날 서울수화전문교육원에서 석 달 배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수화(手話)로 인사하고 지화(指話)로 영등포여고를 표시했다. 그는 수년 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서로 환하게 웃었다. 그는 서툴게나마 수화를 하는 필자가 반가웠던 것이다. 또 필자는 누구 보다 최선을 다해 친절하고 반갑게 안내해주는 그가 고마웠다. 더구나 그는 더듬더듬 수화를 사용하는 필자의 수화 동작까지 흉내내며 내 손가락을 고쳐주면서 웃었다. 생판 모르는 서로가 처음 만나 열심히 몸을 쓰며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또 반갑고 신기했다.

필자는 두 주먹을 나란히 가슴에 대고 숙이며, 잘 가라는 인사와 함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길을 가지 않고 괜찮다고 손사래 치는 필자를 신길역 건널목에서 돌아 나와 영등포여고로 건너가는 계단 근처까지 확실하게 안내해 주었다. 필자는 지금도 그의 도움과 밝은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필자는 그때 수화는 손으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과 마음과 표정으로 대화를 하는 것이라는 서울수화전문교육원 이재란 강사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이 강사는 말도 못 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수화 교육 강사 가운데 특히 미소가 아름다운 강사이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 스무 살에 탭댄스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수화 뮤지컬의 연출가이자 배우이기도 하다.

그는 손가락이 아닌 얼굴, 그중에서도 눈이 대화를 풀어가는 열쇠라고 말한다. 또 듣기 좋은 말보다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 좋다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어도 설령 수화를 모른다 해도 눈빛만으로도 마음의 대화는 할 수 있다고 한다. 탁구 대회에서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그날 오후 내내 나는 무척 행복했다.

그 후 필자는 가끔 얼굴을 문지르곤 한다. 너무 굳어 있고 딱딱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을 만들자. 너무 큰 욕심일까? 모르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얼굴을 갖고 싶다. 입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겨도 잘 안 된다. 역시 얼굴은 마음의 거울. 먼저 밝은 마음을 갖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 보다.

수화를 배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수화는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언어이다. 수화의 첫걸음은 밝은 미소이고 굳어 있는 얼굴을 마사지(?)해서 스스로 부드럽게 풀어놓는 일이다. 또 수화를 지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에 입은 옷이 산뜻하다. 손가락이 분필이라면 윗옷은 칠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필자는 어색하게 굳어 있는 필자의 얼굴을 손으로 다시 쓱쓱 문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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