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백악관

 

몇 년 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그의 저서 '바른 마음'에서 진보와 보수의 가치관에 내재한 도덕적 구성요소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며 극명하게 분열된 현재 미국사회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12일 공교롭게도 그가 이 책을 집필했던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가 열렸고,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더욱이 이 사건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시위자들에 대해 소극적인 비판을 내놓자 미국 내에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경제계의 도덕적 목소리'(The Moral Voice of Corporate America)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놨다. 정부뿐만 아니라 주주, 소비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 다양성을 옹호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미국사회의 기본 ‘가치’가 흔들린 이번 사건의 후폭풍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재계 수장들의 역할에 주목한 기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강단 있는 행보가 줄을 이었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이 반이민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이에 반발한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CEO가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탈퇴했다. 6월 파리협정 탈퇴 발표 직후에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로버트 아이거 월트디즈니 CEO가 대통령 직속 전략정책포럼을 떠났다.

샬러츠빌 사태 이후 대통령 직속 제조업위원회에서 활동한 CEO들의 탈퇴 선언도 이어졌다. 미국의 대표 제조업 기업 CEO들이 참여하는 이 위원회에서 유일한 흑인 CEO이자 노예제와 얽힌 가족사가 있는 제약회사 머크의 CEO 케네스 프래지어는 “머크 대표로서, 그리고 개인적 양심에 비추어 편협성과 극단주의에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라며 위원직 사퇴 입장을 밝혔다. 이어 스포츠용품 업체 언더아머 CEO 케빈 프랭크와 인텔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잉거 툴린 3M CEO, 데니스 모리슨 캠벨 수프 CEO도 탈퇴 의사를 표명했다. 제너럴 모터스 CEO 메리 바라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관용과 포용, 다양성의 가치와 이상을 강화하자”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미국을 형성하는 근본적 원리”라고 말하며,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연초부터 이어진 위원들의 사임과 이번 유혈사태 이후 열린 긴급회의에서 합의된 자문위원회 해체 통보에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경제자문위원회와 전략정책포럼을 해산했으며, 인프라자문위원회를 구성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서 촉발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활 속에서 발생한 근본적 위협이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업시민으로서의 리더십과 사회적 책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다.

민간기업이 국가의 정치적·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분명 익숙한 풍경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일환으로 펼치는 자선단체 기부나 나무심기 활동을 훨씬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소비자 등 기업 내외의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어서 민감한 이슈일수록 분명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는 큰 리스크도 따른다. 하지만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온 스타벅스 의장 하워드 슐츠는 “기업의 의사 결정이 언제나 경제적인 목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포드재단 회장이자 펩시콜라 이사인 대런 워커는 "기업 대표가 이처럼 단도직입적으로 정치적 이슈에 참여하는 것은 미국 기업의 역사에서 중대한 순간”이라고 평했다. 반이민정책과 기후변화, 건강보험, 인종주의까지 한 사회의 근간마저 훼손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른 지금 미국에서 정부의 전통적인 역할보다 기업 리더들의 책임 있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CSR은 오랫동안 마케팅과 결부된 유행어였다. 이제는 CEO들이 일상에서의 책임과 리더십에서도 일정 부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CEO 자문회사 로렐 스트래티지스 대표 앨런 플라이쉬만의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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