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청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과 함께 고민하고 있던 청년들과 협동의 힘이었다. 독점적이 지위에 있는 업체보다 더 질이 좋고 싼 제품을 지역에 들여온다면 지역민들의 복리에도 기여하고 지속가능성도 있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청년들과 마음을 모은 청년은 지역에서 소비협동조합 운동을 펼친다.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협동조합의 힘을 이용해, 발품을 팔아 전국의 도시들에서 질이 좋은 제품을 들여왔다. 마을에 상점을 내고 이 제품들을 판매하기를 3년째, 드디어 독점적 지위에 있던 기존의 업체와 견줄 수 있는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었다.

이 청년에게 함께 지역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는 청년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 협동조합운동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협동의 힘에 대한 직관과 3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었다면 이 협동조합은 어느 순간 스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협동조합운동이 생소한 지역주민들에게 협동조합을 통해 질이 좋은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열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 청년의 이름은 구인회, 1907년에 태어나 1929년 지수협동조합 이사장으로 선출되었고, 1931년 구인회상점을 열었다. 포목상으로서 지켰던 스스로와의 약속은 포목의 자를 속이지 않겠다는 것, 이를 통해 신용을 쌓겠다는 것. 1947년 낙희화학공업회사를 설립해 화장품과 플라스틱제품, 비닐원단, 치약을 생산했고 1958년 금성사를 세워 국내 최초로 라디오와 흑백TV를 생산했다. 1969년 금성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해 반도체를 생산하고 첨단산업을 일으켰다. 1969년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과 문화사업을 펼치던 중, 같은 해 12월 31일 별세했다. 역사70년의 글로벌 기업 ㈜LG의 서장은 이렇게 열렸다.

새해를 맞아, 무언가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LG가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LG와 오뚜기 두 개의 기업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네티즌에 의해 자발적으로 퍼지고 있다. LG는 사회책임경영에 있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오뚜기는 갓(god)뚜기라 불리며 ‘착한 상속세’와 남모르는 선행으로 유명해졌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후일 LG가 이렇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을 예상했을까? 예상하진 못했더라도 최소한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진지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기업경영진들은 국민들의 반기업정서가 비이성적이며 그 원인은 부정확한 정보 때문이라고 수년째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홍보팀을 잘 움직여 미디어에 좋은 기사들을 내보내면 사랑받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미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제대로 본다. 시민들은 수십 년 간 기업들을 지켜봐왔다. 기업제품의 소비자로, 기업 가치에 대한 개미 투자자로, 기업과 기업 공급망의 노동자로, 기업의 거래처로 살아왔다. 그래서 알게 되었을 뿐이다. 수십 년 간 기업들이 성장의 미명 하에 저질러왔던 부정적인 활동들이 시민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대신 좋은 기업도 구별해낸다. 지금의 LG나 오뚜기에 대한 팬심의 발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직원들에게, 제품의 소비자에게, 기업의 투자자들에게, 기업 공급망의 작은 회사들에게, 기업이 있는 지역사회에, 인류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주요 이슈에 대해 진정어린 관심을 보인다면 사랑받는다. 진정어린 관심이란 지금 당장 최선의 결과물을 가져오라는 것이 아니다. 말그대로 진정어린 관심을 보이고 조금씩 실천하라는 것이다. 더 많은 기업들이 국민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뒤숭숭한 시국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특검팀이 입주한 빌딩의 청소노동자가 최순실 씨를 보고 내뱉었다는 외마디 절규가 지금 시민들의 밑바닥 정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새로운 시작과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금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번영에 대해 토론하고 지혜를 모으는, 소곤거림으로 새해를 맞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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