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V 용어를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한 것은 '네슬레'다. 이것을 받아서 학술지에 처음 개념화시킨 사람이 마이클 포터라는 아주 유명한 경영학자다. 하버드 경영대학에 1980년대 당시 최연소 나이로 종신 교수가 된 사람이다. 포터 교수는 2011년 초 하버드 경영대학에서 연구논문을 모아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학술지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에 'The Big Idea Creating Shared Value' 라는 제목의 14p 분량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한국에서는 CSV로 인해 한동안 논란이 많았다. 논란이 되었던 내용들을 꼼꼼히 잘 정리한 논문이 지난 2월 KBR(Korea Business Review)라는 학술지에 소개되었다. '성공적 CSR 전략으로서 CSV에 대한 평가' 라는 논문으로 인하대학교 김종대 교수와 연구진이 함께 쓴 논문이다. 어떤 것이 논란을 불러왔는지 위 논문은 참고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 CSV가 새로운 개념이냐? 아니냐?
"공유가치는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경영학분야에서도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용어이며, 마이클 포터가 만들어낸 용어와 개념이 아니다(김종대 외, 2016)." 그렇다. 기업이 사회적가치와 기업적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개념은 CSV라는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지 실제로는 아주 오래된 개념이다.

1954년에 발간된 피터 드러커의 <경영의 실제>라는 책에도 '기업이란 사회의 한 기관이기 때문에 사업의 목적은 사회 속에 존재해야만 한다.'라고 나와 있다. 즉,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존재라는 것이다. 공유가치창출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또, 마케팅의 대가 필립 코틀러도 2011년 <마케팅 3.0>에서 "시장이 성숙해가면 기업은 산적해 있는 어려운 과제를 더 많이 만나게 되며,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삶과 사회에 커다란 변화, 즉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변혁 주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스턴 컬리지 기업시민센터의 제이슨 사울도 2011년 'CSR 3.0'을 통해 '사회적 전략은 비즈니스 전략이 되어야 한다. 사회적, 환경적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적 자본시장에 의해 변화된 가치는 기업으로 하여금 비즈니스 성과를 내도록 특별히 고안된 새로운 사회참여 모델을 요구한다.'라고 언급하면서, 새로운 시장에서는 사회적 가치를 비즈니스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기업이 차별화에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 뿐만 아니라, 경영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CSV 즉, 기업이 사회적가치와 기업적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님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2. CSV는 기존에 CSR의 발전된 개념,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간의 관계에 있어서 전통적인 CSR이 비 전략적인 접근이라는 주장은 자신들의 CSV를 애써 새로운 개념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성급함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CSV는 본질로 전략적 CSR의 한 유형이며, CSR 또는 지속가능경영 분야에서 논의되어왔던 이전의 많은 개념과 이론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CSR 시대는 가고 CSV 시대가 도래하였다” 는 등의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다(김종대 외, 2016)."

사실, 마이클 포터라는 엄청난 슈퍼스타 학자가 아니었다면 CSV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경영학자들 사이에서는 중론이다. 작년 영국에 갔을 때 CSR과 지속가능경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교수를 찾아뵙고 CSR를 잘하고 있다는 유명한 기업들을 방문해서 CSV에 대해 일부러 물어봤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CSV.. 그거 예전부터 있던 개념인데 CSR이 CSV인거지 뭐 별다른 게 있나?" 라는 응답들이 전부였다.

CSV 붐을 조성한 'D 일보' 가 아무래도 도를 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마이클 포터 교수였다고 하더라도 전후 사정을 살피고 라도 그렇지 좀 앞뒤를 살펴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문기사를 읽고 그걸 날름 받아서 기업사회공헌팀, CSR팀을 CSV팀으로 이름 바꾸고 했던 기업들은 어쩌란 말인지. 언론 종사자분들의 자성을 간곡히 요청한다.

3. 그러면, CSV는 아주 쓸데 없는 해프닝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CSR, 공유가치, 기존의 다른 CSR 관련 이론 개념과의 관계 등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하였으며, 경영전략의 개념 틀과 수단을 CSR 논의에 적용하여 설명함으로써 CSR 분야의 이론, 실무적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크다(김종대 외, 2016) . 그렇다. 무조건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거다.

CSV 논의가 언론에서 활발해지고, 회장님, 사장님들이 그걸 신문에서 본 후 '우리 회사도 좀 잘해봐'라는 지시를 했고 도를 넘은 기업들은 CSV팀을 막 만들었다. 천편일률적으로 남들 하던 사회공헌만 따라 하던 기업들은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랑 사회공헌을 어떻게 연결할까?' 하는 전략적 CSR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으니까.

CSV 열풍이 전략적 CSR에 대해 기업들이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CSV에 대한 인터넷 검색이 늘어나면서 개인블로그에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아졌으니까 아주 나쁜 것은 아니었다.

4. 유난히 한국에서 호들갑을 떨었는데 왜 그랬을까?
한국 기업이 지나칠 정도로 CSV에 매료된 것은 지금까지 전략적 CSR 활동을 성공적으로 해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소위 사회공헌 활동에 엄청난 금액을 투입하고서도 공유가치의 창출은 고사하고 Carroll and Shabana(2010)가 제시한 바와 같은 CSR 전략을 통한 성공사례의 기본적 기대효과인 원가절감과 위험감소, 경쟁비교우위 획득, 평판과 합법성 확보, 상승작용을 통한 (win-win) 성과를 가져온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어 내지 못한 데서 오는 실망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김종대 외, 2016).

그렇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CSR를 사회공헌으로만 이해하고 그냥 주고, 봉사활동하고, 장기적인 결과(OUTPUT)나 성과(OUTCOME)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회적이고 단기적이고 양적인 투입(INPUT)만 잔뜩 늘려 놓은 것에 대한 피로감과 실망감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CSV가 등장하자 '이젠 돈을 쓰지만 말고 사회공헌을 통해 돈도 벌어보자' 라는 이상한 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5.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존의 CSR 전략의 실패를 CSV가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본 논문이 보여 주고 있듯이 결국 CSV는 전략적 CSR의 한 유형이며 기존의 전략적 CSR에 실패한 기업이 CSV에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이미 공유가치의 개념은 많은 CSR 문헌에서 사용되어 왔으며 많은 기업이 실무에서 추구해 왔다. CSR 전략의 성공은 기업 경영전략의 성공이지 전략적 접근방법의 명칭이나 포장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외부 커뮤니이션에 있어서 CSV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진정성(integrity)을 가지고 사회가치에 기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치를 이용한 전략적, 경제적 이익추구에 더 중점을 둔다는 비판을 받을 위험도 있다(김종대 외, 2016).

CSR은 기업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의 인식과 반성에서 출발하였으며 사회 공헌과 사회가치 창출에 노력하는 진정성(integrity)과 혁신(innovation)이 CSR 전략 성공의 핵심임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고 최소한 경영학 분야에서 전략을 논하는 CSR 연구 분야와 실무에서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 기업의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희생해도 된다고 주장한 학자나 실무가는 아무도 없다. 한국 기업들은 ‘CSR vs. CSV’와 같은 이름 붙이기 게임(naming game)을 할 때가 아니다. 기업이 CSR 기초로 돌아가 진정성을 가지고 CSR 전략을 실행하며 지속가능성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여 전략적 CSR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김종대 외, 2016).

같은 생각이다. CSR이 선행되지 않는 CSV는 단지 포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CSR은 기업경영의 원칙이자 철학이고, 시스템이며 프로세스다. 단지 결과나 성과물만 가지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CSV 개념을 적용해서 신상품을 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 기업이 법적, 윤리적, 환경적, 인권적인 기업의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문제기업이라고 하면... 그 신상품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CSR에 대한 바른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별 생각 없이 남들 하는 만큼만 눈치 보며 생색내기 위해 하는 사회공헌활동을 집어치우고,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부터 고민하는 일이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썩은 배를 바다에 띄우고, 안전을 담보하는 것들을 무시하고, 사고가 나면 내 목숨부터 살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저 남의 탓만 하는 그런 몹쓸 일이 반복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기업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요구하고, 그것에 대해 성실히 반응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매우 상식적이며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는 일에 조금이라도 나와 나의 글이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로 세상 무엇보다 귀중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사고의 원인과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점에 대한 조속하고 명확한 진상규명을 통해 희생자 가족분들의 억울함과 원한이 하루속히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세월호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세월호와 같은 크고 작은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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