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미국 자동차 배출가스 환경 기준을 회피하기 위해 일반 주행 환경이 아닌 검사 환경에서 배출가스를 조절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
사기극은 미국 비영리환경단체의 실험에서 밝혀졌다. 단체는 디젤 엔진도 깨끗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출하기 위해 비교적 친환경 브랜드로 알려진 폭스바겐사의 디젤 차량을 선택해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배출량이 공식 보고서보다 수배에서 최대 수십 배가 높게 측정된 것이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2006년부터 친환경 브랜드 '블루모션'을 론칭, 폴로, 파사트, 골프 등 차량에 활용했다. 이를 통해 폴로, 파사트, 골프 차량은 2010년 월드 그린카에 선정되기도 했다. 블루모션은 친환경 라인업과, 에너지 절약, 환경 보호를 아우르는 가장 성공적인 친환경 브랜드로 평가받아 왔다. 디젤 차량 라인업은 '클린 디젤'이라는 마케팅을 펼쳐왔다. 이 모든 것이 속임수였다.
그렇다면 폭스바겐은 왜 사기를 쳤을까? 미국의 환경 규제 기준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규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배출가스 저감장치(SCR)를 설치해야 하는데 워낙 고가이다 보니 중저가 전략으로 미국 시장에 차량을 판매해온 폭스바겐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유럽연합의 환경정책이 있다. 정책에 따르면 유럽의 모든 차량은 2020년까지 1km당 이산화탄소 배출을 95g 이하로 낮춰야 한다. 승용차 특히 디젤 차량의 경우 유로6 기준에따라 올해 9월부터 질소산화물의 배출량을 0.4gkWh까지 낮춰야 한다. 이러한 환경 규제는 자동차 산업 전반에 압박을 가했고 특히, 가솔린 차량에 비해 오염물질 배출량이 많은 중소형 디젤 모델을 주력으로 하는 폭스바겐은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다. 폭스바겐은 이번 사건으로 23일 기준 시가총액이 35조나 증발했으며 미국 환경보호청은 법률상 위반 차량 한대당 37,500 달러의 벌금을 적용 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되는 2.0 TDI 엔진을 탑재한 차량만 48만대가 넘는다. 최고 20조 원 가량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폭스바겐의 CEO '마틴 원터콘'은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바로잡겠다는 선언과 동시에 사임했다.
리콜도 해야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48만대 차량 전부의 리콜을 명령했다. 폭스바겐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1) 출력량 감소와 연비 하락을 감안하고 이미 설치되어있는 배출가스 테스트용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차주에게 돌려준다. 2) 리콜 차량에 배출가스 저감장치(SCR)을 새로 설치한다. 둘 다 소비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문제가 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1,100 만대가 판매됐다. 국내에 판매된 차량도 5만 대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 11일 폭스바겐은 다우존스지속가능경영지수(DJSI)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로 인더스트리 그룹 리더로 선정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업계 평균보다 높은 환경점수를 받았다. 보고서 내용만으로는 세계 최고의 지속 가능한 자동차 회사인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 전문가들은 DJSI 지수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폭스바겐의 2014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조롱하며 폭스바겐에게 CSR은 비즈니스 용어일 뿐이고 폭스바겐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다른 기업들의 CSR 활동 전반을 폄하하게 만들었다며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기극으로 폭스바겐의 신뢰와 평판이 완전히 훼손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블루모션', 'Think Blue', '클린 디젤' 등 환경 정책은 모두 눈속임으로 보인다. 때로 CSR은 옵션 취급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의 폭스바겐 사태는 기업이 철저한 환경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지 않으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승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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