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던 미국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Arlie R. Hochschild, 1940~ )가 2016년 펴낸 책 ‘내 땅의 이방인들’을 최근 밑줄 치며 읽었다. 미국의 스토리와 한국의 현실 사이에 겹치는 대목이 많아 연신 느낌표를 달면서 말이다.1960년,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만일 당신의 자녀가 당신과 반대편 정당 지지자를 배우자로 맞이한다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 내외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0년 조사에서는 공화당 지지자의 40%, 민주당
우리나라 정치현실을 보면 ‘정치의 과잉, 정치의 빈곤’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유권자의 정치참여 방식이나 요구가 너무 과격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과잉 현상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무조건 추종하는 ‘개딸(개혁의 딸)’을 비롯한 팬덤들의 정치적 극성은 이미 여의도 정치를 흔들어댈 정도가 되었다. 더구나 유튜버를 비롯한 각종 1인 매체들이 정치적 입장이 다른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한편 정치의 빈곤은 정치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여야 정치인들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정치적 대화나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난 1일, 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지난해 미국 출장비 상세 내역을 공개하라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다그칠 때 공무원 출장비가 어떻게 지급되고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두 사람 중 누가 옳은 말을 하는가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국내출장이건 국외출장이건 공무원 출장비 중 ‘식비’와 ‘일비’라는 걸 아직도 ‘현금’으로 지급하고 있는가가 궁금해서였습니다.식비는 문자 그대로 밥값인 걸 알겠는데, 일비에 대해서는 똑 부러지는 설명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는 수당이라는 설명도 있고, 출장지에서 사용할 택시비 등 교통비와
편지 가게가 문을 열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편지 가게를 누가 이용할까 싶었는데 서울 연희동에 이어 성수동에 2호점을 냈다고 한다. 각종 편지지와 편지 봉투, 필기도구, 관련 상품으로 예쁘게 꾸며 놓고 편지를 쓸 수 있는 테이블도 마련해 두었다.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서 비치함에 넣은 뒤 다른 사람이 미리 써 둔 편지 한 통을 가져가는 펜팔 서비스의 반응이 꽤 좋단다. 젊은 사람들에겐 편지를 쓰고 답장을 받아보는 경험이 신선한 문화로 느껴지나 보다. 우체국에서만 파는 줄 알았던 우표도 살 수 있었다.다양한 우표를 사러
절기상 백로(白露)다. 새해 다짐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형제들 만나서 밥 먹기, 운동해서 근육 만들기, 아내에게 잘하기, 글 잘쓰기, 살빼기도 그중 하나였다.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를 놓고 담당 의사가 “이렇게 건강 관리하면 자식들 속 썩이게 됩니다.” 하는 말에 다이어트를 다짐했는데.다이어트는 언제부턴가 스테디셀러(Steady seller)에다, 해마다 새로운 다이어트 방법이 생겨나는 유행산업이 되었다. 세계비만재단은 지난 3월 2일 발표한 ‘세계 비만 아틀라스 2023’ 보고서에서 2035년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과체중
사람은 ‘한계적으로(marginally)’ 결정하고 행동한다. 이는 현대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인 개인(rational individual)의 본질을 규정한다. ‘한계’라는 말은 가장자리 또는 끝자락을 의미한다. 이는 대단히 어렵지만 이해하면 기발해서 무릎을 칠 만큼 정확하게 사람의 행동이 지향하는 바를 알려준다.한계적 변화란 한 상태에서 무엇인가가 아주 조금 변화할 때, 그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를 말한다. 수학에서 이 변화율을 순간변화율이라고 한다. ‘한계적으로 행동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
우리의 광복절인 지난 8월 15일 중국에서는 특별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은 중국이 제정한 제1회 국가 생태의 날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사에서 "생태 문명 건설은 중화민족의 영원한 발전의 근본 대계"라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생의 현대화를 강조했다. 중국은 이날 국가의 현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태 문명 건설을 강화하는 전략적 역량을 유지하고 고품질 발전과 높은 수준의 환경보호를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필자가 중국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해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아파트를 세웠다. 공
필자는 지금 파리에 체류 중이다. 센강 옆의 멋진 카페에서 멋진 칼럼 한 편을 남기려 했던 처음 생각과 달리 전 세계 언어가 치열하게 오가는 패션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이 분위기를 담아보고자 한다.프랑스의 대표적 연례 패션 전시행사 중 하나인 ‘who’s next Paris’에 한국의 13개 업사이클(부산물, 폐자재와 같은 쓸모 없거나 버려지는 물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예술적·환경적 가치가 높은 물건으로 재탄생시키는 재활용방식) 브랜드가 초청되어 한국 업사이클관을 운영했다(9월 2~4일).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업사이클 브
요즘 우리나라 도시에서 정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도 열리고 있고(10.31.까지 연장), 서울과 여러 시·군이 개최하는 정원 관련 박람회 등 기획과, 영국 세계정원박람회 한국 작가 수상 소식 등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도시가 거대화하면서 우리는 더욱 자연에 목말라하게 되는 것 같다. 도시가 작았을 때는 도시를 벗어나기만 하면 그럭저럭 들과 나무도 보이고 냇가도 보여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도시들이 야금야금 커지더니 이제 수도권은 인구가 2500만여 명이 되며(서울과 인천 외
깍두기 머리의 UFC 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졸음과 싸우며 운전하다 사고를 낼 뻔하고는 졸음에 완전해 패했다고 고백한다. 전에 방송되던 졸음쉼터 홍보 영상이다. 고속도로에서 “전방 2km 졸음쉼터, 졸리면 제발 쉬어가세요!”와 같은 안내 문구를 쉽게 본다.졸음운전은 위험하다. 운전자가 졸아 3초간 전방을 주시하지 못하면 시속 100km인 차는 80m를 넘게 운전자 없이 질주하는 것과 같다니 고속도로에서 치명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졸음을 막으려 항상 커피 텀블러를 끼고 운전하는 필자는 이제 졸음쉼터 예찬론자가 됐다. 졸음운전의 위
“야, 이번 가을에는 ‘행복 쓰나미’가 몰려온다”라는 내용의 글을 독일 친구에게 보내 오는 10월, 11월에 유럽 9개 유명 교향악단이 서울을 찾아오기에 국내 음악애호가는 ‘복이 터졌다’라는 맥락의 소식을 전하면서 교향악단의 명단을 자랑하고픈 마음을 담아 보냈습니다.1)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2)Zürich Tonhalle Orchestra 3)Czech Philharmonic Orchestra 4)Oslo Philharmonic Orchestra 5)Wien Philharmonic Orchestra
나는 질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친구가 잘될 때도, 연애를 할 때도 딱히 상대를 향해 질투심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걔는 걔이고, 나는 나’라고 확실하게 구분 지었다. 사람들은 생각도 다르고 저마다 고유한 존재이므로, 비교는 딱히 의미가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덕 책마냥 입 바른말만 하던 나의 콧대가 사소한 계기로 무너졌다.퇴근길 지하철이었다. 피곤한데도 잠시도 쉬지 않고 동태눈으로 SNS를 켰다. 습관적으로 열어본 인스타그램 속 사진과 마주쳤고 친구 2명의 여행 후기를 읽었다. 한 명은 내가 이미 다녀
2024년 미국 대선에 도전하는 8명의 공화당 경선 후보가 지난 23일 밤(현지 시각) 우파 방송 폭스뉴스의 진행으로 첫 토론회를 열었다.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77) 전 대통령은 “시간이 아깝다(It wasn’t worth his time)“는 이유로 불참했지만 토론의 승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였다.토론회 참가자 중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인도계 기업인 비벡 라마스와미(38)는 “트럼프 대통령이 21세기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역시 인도계로 뉴욕타임스가 “최상의 트
우리나라 기업이 가장 많이 기부하는 곳은 어디일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하 대중소기업재단)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의 열매로 유명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대부분 알지만 대중소기업재단은 잘 모른다. 이 재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촉진하고, 공업과 함께 농어업이 동반성장을 할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해 공익사업을 펼치고 있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초창기 정치적 영향으로 다소 소란스러웠지만 지금은 한국의 유나이티드웨이(United Way)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영리 지원기구로 발돋움했다
지난 6월 28일 2023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정부 연구개발예산이 이권 카르텔에 의해 나눠먹기식으로 집행되고 있다고 질타하며, 제로베이스에서 예산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 한마디에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던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외면한 채, 정책이라고 내놓은 것은 연구개발예산 배분의 비효율성 책임을 연구 현장으로 떠넘기는 구태의연함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과학기술계는 우려를 넘어 절망하고 있다.모든 과학자들이 특정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하며 연구 의욕을 위축시키고, 연구기관 간 유사·중복 기능의 통폐합 카드로 엄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공산주의자를 추앙하는 기념공원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광주시가 시비 48억 원을 들여 공산주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리는 기념공원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에는 이미 10년 전부터 정율성로가 조성되고, 음악제를 여는 등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정율성로 입구에는 그의 동상도 있다.그의 고향인 화순군은 2019년 12억 원을 들여 그의 생가를 복원했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에는 ‘정율성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중국의 6.25참전 용어) 시절 남긴 소중한 사진’이라는 설명을 붙여
최근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대하자니,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묻고 또 묻게 된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묻지마 범죄’에서부터 도무지 믿기지 않는 학부모 악성 민원까지, 처음엔 별개의 사건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고립화된 핵가족의 부끄러운 민낯이 보이기 시작한다.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책 ‘재난 쌀 국가’(2021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디든 부적응자도 있었을 테고, 게으른 놈, 눈치 없는 놈, 거짓말을 일삼는 놈, 약삭빠른 프리 라이더
지난 8월 18일, 한미일 정상들이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에 모여서 앞으로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3국간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에서 보는 것처럼 3국 정상은 향후 협력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구체적 행동 계획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 그리고 ‘협의를 위한 공약’이라는 세 가지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그리고 중국의 남중국해와 대만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국제 공급망 리스크 공동 관리, 차세대 기술 개발
‘일개’, ‘말단’, ‘주제에’, ‘~랍시고’, ‘깜도 안 되는 것이’, ‘꼴에’, ….며칠 전에 ‘제발 입 좀 다무세요’라는 글을 읽다가 떠오른 말들입니다. 그 글은 “한국 정치인들의 말이 갈수록 거칠고 험해지는 것을 못 보겠다. 정치인들아, 제발 입 좀 다물어라”라는 내용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을 못 하도록 입 다물게 하는 것보다는 말을 가려서 하도록 하는 게 더 좋지 않으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가 ‘이런 말은 제발 쓰지 맙시다’라는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사실이 그렇지요. 입은 밥 먹는 데도 필요한데 입을 다
신림동과 서현역에서 벌어진 ‘묻지 마 범죄’로 공포와 불안이 가득하다. 흉악 범죄는 주로 중증 정신질환자가 저지르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가 염려스럽다. 민감한 개인 정보인 특정 진단명을 범죄와 연결 지어 보도하는 것은 범죄 발생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며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게 하는 일이다.정신질환에 대한 온갖 편견과 오해, 멸시, 사회적 낙인은 대부분 무지와 무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무엇보다 정신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백혈병이나 당뇨, 심장병, 특정 암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