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정차 중인데, 미국에 사는 아들이 손녀와 손자 사진을 보내왔다. 휴대전화 속의 고 녀석들을 보며 웃다가 고개를 드니 앞차가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앞차가 꾸물거리면 빵빵 경적을 울리기도 했는데 너그럽게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니, 부끄러움이 훅 밀려왔다.지하철을 타면 교통약자석 자리가 비어 있을 때가 많다. 퇴근 시간엔 무척 피곤할 텐데, 앉았다가 자리를 양보할 법도 하건만 좌석을 비워 두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한지, 무턱대고 “요즘 것들은” 하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경우가 없는지,
라틴아메리카의 옛 부국인 아르헨티나 대선 결선투표(11월 20일, 현지시간)에서 '남미의 트럼프'라는 하비에르 밀레이가 당선되었다. 언론은 좌파의 몰락이고, 기후변화정책은 물 건너갔다고 보도했다. 우파인 그가 선거유세에서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우리나라 환경정책이 지금 그렇다. 우여곡절 끝에 일회용품 규제 일정을 기껏 마련해 놓더니 느닷없이 11월 7일 일회용품 관리방안이라는 걸 발표했다. 2022년 11월 24일 이미 시행됐어야 했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 계도기간을 또다시 연장하고,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 이익 과다를 비판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포함 야당은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 재추진을 공언하고 있다. 작년에도 정유사들과 은행들에 대한 횡재세 도입이 야당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과 기본소득당 용혜원 의원이 각각 법안을 발의했었다.최근 논의는 은행들의 지난 몇 년 호실적이 빌미가 됐다. 작년 18개 은행은 순이자 마진 대폭 증가로 18조 원의 당기순익을 냈다. 시중은행 4곳은 11조 원, 특수은행 3곳은 4조5000여억 원의 순익을 내서 그 순익만 15조 원을 넘었다.
우리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파치족, 수족, 체로키족, 나바호족 등의 이름을 가진 부족들이었다. 미국의 서부영화에서 그들은 서부로 진출하는 백인들에게 쫓기어 천막을 접고 황급히 도망치다 되돌아와 백인을 습격하는 유목민처럼 묘사된다. 이런 관념은 미국인들이 서부로 확장한 18세기 이후에 형성된 지식이다. 백인들이 오기 전 미국 인디언들의 삶은 과연 어땠을까? 그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유적이 미국 남서부 사막 속에 남아있다.미국 콜로라도주 남서부에 있는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Mesa Verde National
가끔 SNS에서 과거의 오늘 사진을 보면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고 있는 모습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코로나 19가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물론 요즘 다시 독감이 유행하기도 하고 마스크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필자는 다시 그 답답함을 느끼고 싶지 않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코로나 19라는 전례 없는 위기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도시가 봉쇄된다든지 수능이 연기된다든지 새로운 일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새로운 사건만큼이나 새로운 쓰레기가 등장하고,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1일 물러났다.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자 표결을 앞두고 전격 사퇴한 것이다. 취임 석 달여 만이다. 사상 최단임 방통위원장이 됐다. 위원장 포함 2명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유지되던 방통위원회가 정족수(최소 2명) 미달로 당분간 그 기능을 못 하게 됐다. 대통령이 국회추천 방통위원 3명의 임명을 미뤄 정원 5명 중 1명만 남은 때문이다.그러나 근본 원인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즉 사장과 이사진을 자기네 정파에 유리하게 구성하려는 여야의 정쟁 때문이다. 민주당의 이 위원장 탄핵 시도는 내년 총선까지 방통위의 기능을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문을 열어서 아내와 함께 산책길에 들렀다. 프랑스 이름의 작은 카페인데 안으로 들어서니 동그랗고 작은 테이블과 나뭇가지를 구부린 등받이 의자(그 유명한 Thonet chair의 유사품일 듯.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의 Michael Thonet가 개발한 의자)가 옹기종기 자리를 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받으니 커피잔이며 물잔이 손 안에 쏙 들어온다. 커피 맛도 좋고 양은 모자란 듯 적절하다. 커다란 머그잔에 잔 받침 없이 타 오는 최고로 유명하다는 프랜차이즈 커피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새삼 공간이나
최근 차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옮겨야 되는 짐이 있고, 그곳에서 차를 쓰는 게 편해서 운전대를 잡은 것인데, 집이 있는 용인에서 남해안 카페리가 다니는 항구를 거쳐야 하니 꽤 먼 길이다. 지리산 탓인지 여수 가는 고속도로가 남원쯤서부터 내리막이 시작돼 한 100km 이어지는 듯했고, 쉼 없이 터널이 나오는 게 기술이 좋아져 옛날처럼 두부 베듯 산자락을 깎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라 감탄했다.이렇게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주마간산했는데 내가 운전을 자주 하는 일이 비교적 새롭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는 개인적 이유와 더불어, 전적으로 스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근무하는 정다은(배우 박보영 역할)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다. 11월 초 공개 직후 단숨에 OTT 시청률 1위를 찍었지만 3주도 채 안 돼 화제성을 잃은 이 드라마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3년 차 간호사 정다은이 정신병동으로 근무지를 이동하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정신질환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의 이야기이다. 정신병동이라는 ‘정상적’인 상태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공시생, 사회초년생, 워킹맘 등 평범한 사람들이 환자복을
한중일 외교장관은 3국 정상회의 준비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연내 개최를 희망했던 한중일 정상회의는 이르면 내년 초에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박진 외교부 장관은 26일 제10차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3국 협력체제의 최정점인 정상회의를 상호 편리한, 가장 이른 시기에 개최하기로 한 합의를 재확인하고 정상회의에 필요한 준비를 가속화하기로 했다"며 "머지않은 시점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3국 외교장관의 만남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19년 8월 제9차 회의를
필자가 우리나라 마당극인 탈춤에 푹 빠진 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동적 춤사위는 물론이거니와 탈[가면, 假面)]이 가진 특별함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갖가지 탈의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우리네 탈에서는 피부 병변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피부과 전문의로서 필자는 취발이탈, 미얄할미탈, 신할아비탈, 샌님탈, 문둥이탈 등등의 이름에서 피부 병변을 어렵지 않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경이롭기 그지없고,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입니다.필자는 그동안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Le Musee du Quai Branly)에서
‘만수유 공수거(滿手有 空手去)’, 손에 가득 쥐어봤으니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지난 9월에 별세한 이종환(李鍾煥) 삼영화학공업 창업자의 말이다. 그가 경영했던 삼영화학은 연 매출 2000억 원 정도의 중견기업, 그런데 그가 사재를 털어 만든 관정(冠廷) 이종환 교육재단은 기금 규모가 1조 7000억 원이다. 개인이 만든 장학재단으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설립 이래 23년간 1만1500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고 이 중 750명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부분은 이공계가 전공이었는데 인문계로는 경제학이 유일하다. 이유는? 노벨상에
세계는 지금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에 따른 기후 위기와 이를 억제하고자 하는 탄소중립(Net Zero)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탄소배출량 억제 정책은 환경 회복과 더불어 무역규제로 확대되어 각 국가는 에너지분야 저/무탄소 기술혁신과 산업 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패권 경쟁을 벌이며 신냉전 시대를 초래한 미·중은 자국 내의 생산·소비 시스템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기에 탄소 배출량이 세계 1·2위를 다투어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우리는 제조업 및 수출
1990년대 중반,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가 넘는)를 지나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를 향해 가고 있던 북유럽 국가로부터 들려온 소식이다. 당시 북유럽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족양식(?)이 LTBT커플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LTBT란 Living Together But aparT의 머리글자를 조합한 것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별거동침’(別居同寢) 정도가 될 것 같다.북유럽의 경우 65세에 접어들게 되면 이혼이나 사별로 인한 돌싱 비율이 35~40%에 이르는 상황이고
11월 15~1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제30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21개국 정상급 지도자가 참가하여 양자 간, 다자 간 협의를 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관심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 간의 양자 회담에 쏠렸다. 그 이유는 양국 간의 갈등이나 협력 여부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그런데 15일 샌프란시스코 인근 우드사이드 '파이롤리 에스테이트'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양국이 군사 분야 등에서는 협력하기로
오랜만에 모이면 안 빠지는 이야기가 건강과 건망증이다. 얼마 전 다섯이 모인 점심 자리에서는 건강보다는 건망증 이야기가 훨씬 더 길었다. 다섯 중 제일 나이 적은 친구가 며칠 새 지갑 두 번, 전화기 한 번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수서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곤 수색역으로 갔다거나, 남도식당으로 가야 할 걸 거기 가까운 고향식당에서 혼자 달랑 기다리다 부랴부랴 뛰쳐나와 남도식당으로 달려왔다는 따위의 일화가 수북한 ‘천재 끼’ 확인된 사나이가 이번엔 뭔 우스운 일 저질렀나, 모두 귀를 기울였다.지갑은 택시를 탔다가 내려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연말에도 ‘2023, 올해의 말 말 말’, 이런 걸 발표할 거다. 요즘, 말들이 하도 거칠고 천박해져서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을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 주고받는 말을 보면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사악한지를 절감한다.어떤 주제라도 말을 독점해 버리거나, 만났다 하면 불평, 불만과 남 헐뜯는 얘기로 도배를 하는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다. 남이 써 준 원고를 읽거나, 준비도 없이 단상에 올라 지루하게 설교를 늘어놓는 사장도 딱하다. 남의 행사에 와서 설치고 다니다가 행사 도중에 퇴장해 버리는
입동(立冬)이 지나면서 반갑지 않은 정전기(靜電氣)가 찾아왔다. 옷을 입고 벗을 때나 차를 타려고 문고리를 잡거나, 심지어 지인과 악수를 할 때도 전기가 와 깜짝깜짝 놀라고, 기분도 그렇다. 그래서 정전기를 없애준다는 스프레이 종류를 찾아서 옷에 뿌리거나 건조하지 않도록 손에 크림을 바르기도 하지만 정전기를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한다. 이런 현상은 건조해지는 날씨 탓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이 건조해지니 더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그런데 정전기를 없애 준다고 하는 제품도 많이 쓰면 좋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제품에 표시된 문
인공지능(AI)은 1637년 르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에서 “인간은 기계”라고 주장한 데서 출발했다. 그는 인간이 동물처럼 육체라는 기계이나 경험을 쌓는 기계이고 뇌는 그 태엽이라고 주장했다. 이 인간론이 컴퓨터와 AI 출현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그로부터 300여 년이 지난 1936년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이 컴퓨터를 의미하는 튜링기계(Turing Machine)를 제안했고, 1940년대 디지털 컴퓨터가 발명되었다. 튜링은 1950년 그의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생각하는 기계’의 구현 가능성을 제
지난달 미국 여행 때 초등학교 정문에서 큰 표어 같은 것을 발견하고 순간 머리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Be kind to your mind"라는 표어였다. 뜻은 "당신의 마음에 친절하라"일 것인데, 초등학교 정문에 있으니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의 마음에 친절하세요"라고 권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마음에 친절하라'니, 이 말이 무슨 뜻인가?궁금해서 알아보니 이 말이 미국에서는 폭넓게 사용되고 있었다. 비영리단체인 '미국정신건강(Mental Health America)'은 이 문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