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1902~1994)는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에서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역사주의적·전체주의적 관점을 비판했다. 원래 이 책은 ‘플라톤의 마술’(1권)과 ‘예언의 높은 물결;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그 여파’(2권)로 나뉘어 발간되었다.1권에서 포퍼는 플라톤의 ‘국가론’이 스승 소크라테스의 인도주의적,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전체주의를 옹호한 것으로 비판한다. 그는 플라톤의 사회변화와 사회 불만에 대한 분석에 공감을 표했으나, 전체주의로 귀결되
러시아 모스크바 서쪽 구릉지에서 발원해 벨라루스를 거쳐 우크라이나를 가로질러 흑해로 흘러 들어가는 긴 강이 있다. 드니프로강이다. 총길이 2200여 ㎞로, 러시아에서는 볼가강 다음으로 긴 강인데, 이 강을 따라 비옥한 흑토 지대가 형성돼 오래전부터 농업이 발달했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대의 철광석 매장량을 보유한 것도 이 일대 덕택이며 이 강을 따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등 곳곳에 내륙항이 건설돼 북유럽과 흑해를 잇는 물류망 역할도 해왔다. 키이우 체르카시 드니프로 자포리자 헤르손 등 우리가 최근에 자주 들은 도시나 지명이 다
매년 이맘때쯤 반복적으로 새해의 다짐과 소망이 SNS를 뒤덮는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겠다.’, ‘독서나 공부’와 같은 자기 발전을 위한 목표나 흡연 등 나쁜 습관들을 줄이는 목표를 세우며 새해에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다짐한다. 언젠가부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겠다’, ‘칭찬을 많이 하겠다’와 같은 관계에서의 다짐들도 눈에 띈다. SNS에 목표를 올리는 이유는 공개적으로 목표를 공개하여 지지와 지속할 계기로 삼고자 하는 바일 것이다.올해는 전쟁의 종식과 모든 어린이들의 안전과 학습권 같은 넓은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소망들이
20세기 초 국제근대건축가협회(CIAM)는 도시를 기능적인 실체로 정의하고 그 주요 기능을 거주, 노동, 여가, 그리고 통행으로 정의하였다. 도시계획에서는 각 기능들의 구역을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 되었으며 이 원칙은 2차 세계대전 후 전 세계의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산업혁명 이후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으로 모든 기능이 뒤섞여 혼란하고 열악한 거주환경을 양산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방식이다. 건축이나 디자인에서도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말이 절대적 진리로 여겨졌다
“5, 4, 3, 2, 1!”추운 날씨에도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만원이다. 울산 간절곶과 강릉 경포대, 부산 해운대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저마다 소망을 빌며 보람찬 한 해를 다짐하는 가족과 연인들의 사랑과 열정이 참 예뻤다. 하지만 한때는, 다 같은 날들을 묵은해니 새해니 구분해 놓고 야단법석인 사람들이 유난스러워 보였다. 일출은 왜 꼭 1월 1일에 봐야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심지어는 아내나 아이들이 타종 행사를 보고 자자고 해도 쓸데없는 짓
우리는 늘 이맘때 ‘희망찬 새해’라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러나 올해 그런 덕담을 주고받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 암울한 때문이다.국제적으로는 11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이로 인한 곡물 등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전 세계가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인플레 억제를 위한 각국의 고금리 정책은 경기침체를 불러오고, 제3세계에서는 외환위기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중 대결도 그 끝이 안 보인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 등에서 보듯 노골적인 자국 우선
이번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중동에서 열린 겨울 월드컵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4년을 기다린 선수들이 경기력을 증명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뉴스를 먼저 접했다. 경기장 공사로 희생당한 6000여 명의 이주 노동자들, 성 소수자 차별, 뇌물 스캔들까지 심각한 문제를 제대로 책임지거나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또,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과에 비교한다면 예전만큼 활약할 수 있을지 기대되지 않아서 월드컵을 챙겨볼 생각이 없었다.예상과 달리, 이번 월드컵은 우리나라의 16강 진출과 온 국민의 환호를 받으며 끝났다. 우리 선수들의
근래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만든 아주 다른 두 가지 양상의 데모가 있었습니다. 민노총이 주동한 화물연대 파업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였습니다. 필자는 이 두 가지 데모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문제를 정치‧사회학적으로 분석할 생각도 없으며, 그런 전문성도 있지 아니합니다.그런데도 언뜻 보기에 화물연대 파업은 이를 주도하는 민노총이라는 거대 조직이 있는 데 비해, 전장연의 경우는 사회적‧문화적 코드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전자인 화물연대 파업은 다른 연관 산업 분야와 먹이사슬 관계로 뒤엉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22년도 인물(2022 Person of the Year)’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투혼(‘the spirit of Ukraine’)을 선정했다. 타임은 젤렌스키가 “지난 수십 년간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 행동하게 만들었다(galvanized the world in a way we haven't seen in decades)”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은 골리앗 러시아군을 종이호랑이로 만들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오랜 중립국 지위를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표지의 문구가 인상적이었던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기부금이 잘못 사용된 사례 중 하나로 ‘플레이펌프’를 꼽았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리면서 노는 놀이기구 ‘뺑뺑이’에 펌프를 결합한 플레이 펌프를 ‘플레이펌프스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 구호단체가 도입했다. 그리고 물 부족 국가들에 이 식수 펌프를 보급했다. 우리 직원 중 한 명도 이 펌프가 한창 보급될 당시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플레이펌프 같은 적정 기술을 개발하는
우연히도 필자가 논설위원 중에서 올해 마지막 칼럼을 작성하게 되어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독자들을 위해 어떤 칼럼 주제를 선정해야 멋진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필자의 전공이 정치학인지라, 자연히 국내외 정치적 이슈를 찾아보았다. 먼저 올해 국내 정치에서 가장 큰 사건이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현 정부의 장래를 전망해 보는 칼럼을 준비하였다. 그런데 내용에 새로운 것이 없어서 포기하였다.다음으로 국제 사회에 눈을 돌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착점을 다루는 글을 마련하려고 노력했으나 정보의 한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를 선정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념 갈등 및 진영 논리로 인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패배자가 된다는 강박관념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포착해냈다는 해석이 뒤를 이었다. 거짓을 말하고도 사과하지 않는 정치 풍토를 향한 경고 메시지로 읽어도 좋으리란 의견도 있었다.2주 전 이번 학기를 마치면서 교보문고에 들른 길에, ‘우리는 모두 거짓말쟁이’로 번역해도 좋을 책 ‘Everybody Lies’를 집어 들었다. 제목에 낚이긴 했는데 내용이 예상외로 흥미진
최근 카톡으로 크리스마스 e카드를 하나 받았다. 나는 카톡을 열어보고 눈을 의심했다. ‘Merry Christmas’라는 글이 적힌 카드의 배경사진 때문이었다. 그 사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포승줄에 묶여 연행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풍자라 하기에는 도를 넘은 합성 사진이었다. 좌파의 염원이 서려 있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내게 카드를 보낸 이는 명문 대학 출신의 엘리트다. 그는 나름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자부한다. 공부도 많이 했다. 그런 사람이 이처럼 몰상식한 카드를 보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물론 그는 좌파 인사다.
60대 중후반의 두 남자가 한 시간 넘는 통화를 세 번이나 했다. KBS에서 32년간 근무하면서 ‘아침마당’, ‘6시 내 고향’,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굿모닝 대한민국’, ‘일요스페셜’, ‘집중기획’ 등을 제작했던 송희일 PD와 나눈 수다였다. ‘젊은 나그네’라는 여행 모임에서 30년 넘게 만나 온 사이지만 이렇게 긴 대화를 나눈 건 처음이다. 어딘가 아프다고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대화방에서 퇴장을 해버려 근황을 모르던 차에 송 PD가 촬영한 동영상을 누군가 올렸기에 내가 전화를 먼저 걸었었다.작년 12월, 허리에 통증을 느껴
2022년 초 시작된 가상자산 시장의 겨울(winter)이 계속되고 있다. 2021년 11월 시작된 미국발 금리 인상의 여파로 글로벌 주식시장과 함께 가상자산의 가격이 크게 폭락하였고, 5월에는 테라-루나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하였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세계 3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가 파산하면서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시각이 ‘혁신’에서 ‘거품’으로 변하였다. 2023년에도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당분간은 가상자산 시장의 겨울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의 현황
2020년 5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의 개정으로 촉발된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시행을 앞둔 지난 6월 해당 가맹점들의 반발로 시기를 늦추었다가 지난 12월 2일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세종시와 제주도에서만 우선하게 됨에 따라 전국적으로는 1년 뒤로 또 후퇴하게 되었다. 게다가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모든 매장이 아니라 전국에 100개 이상의 가맹점을 소유한 대형 프랜차이즈·카페·찻집·패스트푸드 가맹점만 저촉을 받게 되고, 개인·무인카페, 편의점은 제외된다.이러니 규제를 받는 매장에서는 형평성 문제(제주도에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 시작된 경제발전은 올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목전에 도달했고, 1987년 민주화로 지금은 대의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잘 운영되는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발전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신생 독립국 중 처음으로 원조를 받던 국가가 주는 국가가 되는 데까지 이어졌다.그런데 이 자랑스러운 역사에도 오늘날 우리는 시장경제+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나라가 과거에 비하면 지금 잘 살고, 능력 있고 지적·기술적 역량이
얼마 전 열린 한중일 3국 바둑연승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한국과 중국 기사가 혈전을 벌여 마지막에 반집을 역전승으로 이긴 대국인데, 모든 수를 1분 안에 두어야 하는 초읽기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두 기사가 머릿속에서 온갖 계산을 하며 최선의 수를 찾아내어 두는 모습은 경이롭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더 놀랄 일이 있었다. 그것은 이 대국의 중계 화면에 연결된 AI(인공지능)에 의한 이른바 바둑컴퓨터가 대국의 모든 수를 놓고 그때 그때 유불리를 판정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이세돌 9단과의 대결에서 이미 그 실력이 입증된 바
우리 도시는 벤치에 꽤나 인색하다. 시내건 주거지건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앉았으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디 돈 내고 들어가 앉을 커피집은 수도 없이 많건만 간단히(특히 혼자) 앉을 벤치는 아무리 둘러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커피집 장사 잘되라고 시가지 내에 벤치를 두지 않는다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서서히 여기저기서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벤치가 있는 장면 1; 광화문광장8월 개장한 광화문광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직접 가보고 가장 신선하게 느낀 것은 개인용 벤치가 등장한
12월 12일은 동북아 근대사의 흐름이 크게 바뀐 날이다. 이날 유독 큰 사건들이 한국과 중국에서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중국에서는 1936년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시안(西安) 연금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또 1948년 대한민국이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됐다. 박 대통령의 18년 장기 집권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생긴 권력 공백으로 시국은 몹시 어수선했다. 민주화 투쟁을 벌이던 정치인, 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