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돌려 꽂기 신공이다. 마블로부터 사들인 ‘스파이더맨’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소니 픽쳐스는 최근 몇 년간, 스파이더맨 관련 키워드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겠다는 심정으로 돌격하는 분위기다. 평행세계에 공존하는 스파이더맨을 한데 모은 애니메이션 를 만들고, 스파이더맨 저작권 반환을 원하는 마블-디즈니와의 전략적 협력(마블 스튜디오가 스파이더맨 캐릭터를 사용하도록 일시적 허용)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 세계도 일부 수혈했다. 지난해
1981년, 지구촌 7억 명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찰스 왕세자와 백년가약을 맺으며 영국 최고의 로열패밀리가 된 다이애나 스펜서. 그러나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동화는 없었다. 남편의 불륜, 전통과 관습을 중요시하는 왕가의 보이지 않는 벽, 원만치 않은 시댁과의 관계가 다이애나를 오랜 시간 짓눌렀다.결국 다이애나는 1995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결혼에는 늘 세 명이 있었어요”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으며 보이지 않는 강을 건넜다. 이듬해, ‘세기의 결혼’이 종말하고 ‘세기의 이혼’이 그렇게 현실화
1939년 태어나 팔순을 넘겼으나, 많은 창작자에 의해 다시 태어나며 영생의 길을 걷고 있는 DC코믹스 간판스타. 본명은 브루스 웨인이나 배트맨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고담 시티의 백만장자. 1989년 팀 버튼에 의해 흥행 보증 수표로 떠 오른 후 조엘 슈마허, 크리스토퍼 놀란, 잭 스나이더 등에 재해석 된 배트맨이 이번엔 맷 리브스에 의해 또 한 번 나이를 거꾸로 갱신했다.다시 날아오른 배트맨의 가장 큰 족쇄는 내부에 있다. 너무나도 뛰어난 ‘배트맨 선배’가 있다는 것. 크리스토퍼 놀란 표 배트맨이 관객의 눈높이와 기대치를 겁나게
그림체라는 게 있다. 순정만화 그림체라거나, 명랑만화 그림체 같은. 에서 남주혁이 연기한 백이진은 흡사 순정만화 그림체의 의인화 같다. 갸름한 턱선에 우수에 젖은 눈빛. 어깨는 태평양인데 얼굴은 소년미 넘치는 반전이 선사하는 의외성의 매력. 여기에 다소 비극적인 캐릭터 서사가 가미돼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태리가 연기한 나희도는 연신 명랑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림체의 모형으로 극에 침투해 있다. 단순히 귀여운 처피뱅 헤어스타일이나 털털한 걸음걸이 같은 외형 때문만은
살짝 속은 기분이다. BDSM(구속과 훈육, 지배와 굴복, 사디즘과 마조히즘적 성적 취향)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음지에 머물러 온 도전적인 소재였고, 표현 수위 제약이 덜 한 넷플릭스가 플랫폼이라는 점이 더해져서, (미키 루크, 킴 베이싱어 주연의 1986년 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매기 질렌할, 제임스 스페이더 주연의 2003년 작) 류의 과감한 연출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확인해 보니 소재만 도발적인 뿐 알맹이는 익숙한 로코물이다. 흡사 비포장도로 달리는 오프로드(off-road) 레이싱에
#1이효리: “언니는 언니 없이 어떻게 버텼어요? 언니는 위에 이런 선배가 없잖아요.”엄정화: “몰라, 술 마셨어. (정)재형이 붙들고 울었지!”이효리: “나 항상 언니가 생각나. 내가 올라가는 이 계단을 언니는 이미 올라갔겠구나.”#2이효리: “지금 후배들은 딱 너를 보면서 엄청 열심히 할 거야.”보 아: “그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해요. 좋은 본보기로 계속 있어야 된다…라는 압박감?”이효리: “그렇게 압박감 안 느껴도 (넌) 충분히 멋있어!”여기 세 명의 여성이 있다.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뮤지션들. 험난한 쇼비즈니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 007시리즈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대사다. 술 한잔에 담아낸 제임스 본드의 취향과 철학은 강력한 것이어서, 영화 흥행과 함께 보드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는 사실. 가장 최신판 007 (2021)에서도 우리의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본격 거사를 치르기에 앞서 술 한 잔을 벌컥 들이켰더랬다. 독한 술을 마셨는데도 총알은 여지없이 백발백중. 긴장을 푸는 데 적당한 알코올은 진리인 건가.티빙 오리지널
아마도, 명절 특집 영화를 통해서였을 것이다. 찰스 헤스톤 주연의 (1959)를 처음 본 건. ‘스펙터클 영화의 끝판왕’으로 불리며 아카데미 11개 상을 휩쓴 기념비적인 작품. 감독 윌리엄 와일러로 하여금 “신이시여, 진정 제가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까?”라는 ‘자뻑’ 멘트를 내뱉게 한 고전 명작. 영화라는 게 뭔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지만, 벤허와 멧셀라(스티븐 보이드)의 기구한 우정에 몰입했고 스펙터클한 마차 경주 장면에 매료됐었다. 이후에도 를 여러 번 봤다. 좋아하는 고전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자주 호출하기도 했으니
새해에도 ‘오픈런(Open Run)’ 행진 소식이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명품을 손에 넣기 위해 추운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 무엇이 명품을 향한 소유욕을 부추기는가. 단순히 최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값비싼 제품이라서?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명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오랜 시간을 거치며 쌓인 ‘브랜드 가치’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으며 시작된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브랜드 ‘구찌(Gucci)’의 가치도 그렇게 시간과 함께 쌓였다. 다이애나비(妃)를 비롯, 그레이스 켈리,
민주당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리처드 닉슨의 1960년 TV토론은 정치사의 ‘결정적 한 수’로 꼽힌다. TV토론을 제안한 쪽은 정치 신인 케네디였다. 케네디의 제안을 받아들일 때만 해도 닉슨은 이 토론이 가져올 파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토론 승낙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닉슨이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케네디가 유려한 말투와 논리적인 이야기로 시청자의 호감을 사는 동안, 닉슨은 웅얼거리는 말투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는 모습으로 매력 지수를 떨어뜨렸다. 토론 후 흐름이 달라졌다. 직전까지 닉슨 우위로 흐르던
‘새우깡’인 줄 알고 샀는데 봉지를 뜯어보니 아뿔싸, ‘매운 새우깡’이다. 비슷한 포장용지에 속았다. 값은 이미 지불했고 포장지도 뜯었으니 그냥 먹기로 하는데, 어쨌든 원했던 ‘새우깡’이 아니니 먹는 내내 성에 차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매운 새우깡’에 의외로 손이 가요 손이 간다면? 를 논하면서 가수 ‘비’도 아니고 계속 ‘깡’ 타령을 하는 이유는 가 이 ‘매운 새우깡’ 같은 영화여서다. 는 2015년 깜짝 흥행 대박을 일으킨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블은 떡밥의 제왕이나니. 마블 스튜디오가 소니 픽쳐스와 전략적 동맹 관계를 맺고 만든 두 번째 스파이더맨 솔로 영화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에서 닉 퓨리(사무엘 L. 잭슨)는 미스테리오(제이크 질렌홀)를 소개하며 말했더랬다. “벡은 다른 우주에서 온 사람이야. 핑거스냅이 우리의 차원에 구멍을 뚫어놨어.” 다중우주로도 불리는 ‘멀티버스(multiverse)’는 돌이켜 보면, 스파이더맨/피터 파커(톰 홀랜드) 미래에 대한 거대 예고였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한 횡적 확장을 노리는 MC
SF 문학사의 교본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 1965년 발간된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이다. 네뷸러상·휴고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잡은 [듄]은 오랜 시간 영화계에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 영화화에 도전한 자는 있었지만, 제대로 성공한 자는 없어서다. 1974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가 당대의 예술가들과 영화화를 시도했으나 무산됐고, 리들리 스콧의 중도 하차를 거쳐, 1984년 데이비드 린치에 의해 드디어 영화화됐으나 불운하게도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미끄러지는 오점을 남겼다. [듄
올림픽에는 스포츠 선수만 있는 게 아니다. 올림픽 관계자들과 각국 정상과 정치인과 돈줄을 쥔 스폰서와 미디어가 있다. 그들에게 올림픽은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 아니다. 정치 외교의 장이고, 상업 자본 홍보의 장이고, 특종을 잡을 수 있는 현장이다. 개최국에겐? 국가 브랜드를 높일 절호의 기회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여러 욕망이 뒤엉킨 올림픽 유치에 여러 나라가 4년마다 뛰어드는 이유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국가 간 장외 경연장이 되어 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2016년 리우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나홍진 감독이 ‘곡성’의 무당 일광(황정민)의 전사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생각했다. ‘곡성’의 미끼를 문 것은 관객만이 아니구나. 감독도 단단히 물어버렸구나. 아직 청산하지 못하고 떨궈야 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구나. 그것이 호기심이든, 미련이든, 무엇이든. 그렇게 ‘랑종’ 프로젝트가 ‘곡성’에서 알을 깠다.“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전혀 새롭게 일광의 전사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나홍진의 생각은 프로젝트를 태국으로 이끌었다. 프로젝트를 이끌 적임자로 나홍진이 점 찍은
얼마 전 비염에 걸려 후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감각 기능 하나 잠시 고장 났을 뿐인데 일상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감각이 완전히 상실된 삶이란 어떨까, 하는 괜한 상상에 빠졌다. 이러한 상상은 영화를 볼 때도 자주 한다.오감(五感)은 공포나 미스터리물이 잘 다루는 소재이니 말이다. 이를테면, 사라마구의 소설을 영화화 한 ‘눈먼 자들의 도시’(2008)는 백색 실명 바이러스가 살포된 도시의 아포칼립스를 보여줬다. 넷플릭스의 ‘버드 박스’(2018) 역시 시각을 겨냥해 “보면 죽는다”라고 경고했다. 모든 감각이 하나둘 마비
하나 마나 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과 와 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로 봤다. (당연하지, 넷플릭스로 공개됐는데!) 그러나 하나 마나 한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OTT로 봤다’라는 말에는 무수한 변수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고백하자면, 나는 13인치 노트북과 헤드셋을 이용해 세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 좋은 통로로 영화를 관람하지 못하다 보니, 보는 내내 ‘저 장면은 극장에서였다면 더 근사했을 거야’ ‘이 소리는 빵빵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극장에서 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야!’라
시리즈 순서와 부제를 읊는 건 내겐 이제 불가능하다. 좋지 않은 기억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리즈 역사가 20년이나 돼서다. 2001년 빈 디젤과 폴 워커가 레이스를 시작했을 때, 이런 장수 시리즈가 될 줄 그 누가 예상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만큼, 갑절의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 폭주족이었던 도미닉(빈 디젤)은 글로벌 도망자가 됐고, 어제의 적들은 오늘의 아군이 됐고(이 시리즈의 특징이다), 그리고 누군가는…다신 볼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시리즈, 질주 역사9번째 튜닝 작품인
“12월 31일, 그날 비가 오면 만나기로 하자.”를 보다가 슬며시 웃었다. “그날, 눈이 오면 만나”라고 말했던 오래전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러나 눈은커녕 이상기온으로 종일 포근했던 봄 같았던 그날을 통과하며 날씨에 운명을 맡기는 일 따위 다시는 안 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이제 그 기억은 뭐랄까…멋쩍은 추억의 한 토막일 뿐이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는 ‘현실 감각’을 입는 일이기도 했으니, 어떤 의미에선 낭만의 상실이기도 했다.는 사라진 낭만을 복원하려는 영화다. 매해 12월 31
‘인싸(인사이더)’만 주목받는 서러운 세상. 그러나 누군가는 옆자리를 주목하는 법이다. 이준익 감독이 그렇다. 이준익 감독은 (2016)를 만들면서 윤동주(강하늘)와 함께 자랐지만, 세상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동갑내기 사촌 송몽규(박정민)를 소개했다. 윤동주를 만나러 갔다가 송몽규에게 반해 나온 관객이 한둘이 이니었다. 의 부제가 있다면 가 적절했을 것이다. 이후 내놓은 (2017)에는 아나키스트 박열(이제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박열의 시 ‘개새끼’에 반해 적극적으로 대시하고 일본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