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공휴일로 지정돼 일상을 잠시 멈출 정도로 총선은 큰 정치사였다. 이런 대사를 치르느라 모두 진이 빠졌으니 나라 밖 세상도 이를 감안해줄 만도 한 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야속하다. 우리 경제에 부정적 파급력이 큰 일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 사정, 소비자 씀씀이 호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물가가 예상했던 것만큼 내려오지 않고 있다.이러니 모두 목 빼어 기다리고 있는 미국의 금리 인하가 늦어질 것 같으니 한은의 금리 인하도 미루어질 전망이다. 이런 미국 사정에 원/달러 환율은 빠르게 오르고 있다. 금리 인하를 고대하는 금융시
봄기운 완연한 저녁에 길을 걷다가 호프집에 들어갔다. 친구와 나는 생맥주 딱 한 잔과 버섯 튀김 한 접시만 시켜 먹기로 했다. 그 호프집은 화장실 문도 낡았고, 주방에 맥주와 짐이 한가득 쌓여 있어 부산스러운 공간이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우리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운 좋게 자리가 생겼다. 맥주와 소주를 걸쳐서인지 주변 테이블은 무진장 시끄러웠다. 가게에서 제일 조용한 우리는 버섯 튀김을 기다리며 맥주로 목을 축였다.60대 중반의 여자 사장님은 몹시 바쁘셨다. 주문에 서빙, 요리, 뒷정리까지 혼자 도맡아 하
우크라이나전쟁이 3년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서방의 최대 군사동맹 기구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창설 75주년을 맞았다. 1949년 미국 주도로 영국·캐나다·프랑스 등 유럽과 북미 지역의 12국이 결성한 나토는 냉전 당시 구(舊)소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출범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엔 동유럽 국가가 대거 가입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웨덴 핀란드 등 중립국들도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32국으로 늘었다. 한편 한국을 위시하여 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협력국(global partners
필자가 ‘늦깎이’로 대학원에 입학하고, 미술사 박사학위 과정에서 사계(斯界)의 전문가에게 다양한 강의를 청강(聽講)할 수 있었던 것은 ‘배움의 기쁨’을 더하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유홍준(兪弘濬, 1949~ ) 교수의 조선 시대 미술 문화에 대한 강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에 관한 강의는 늘 생동감이 넘쳐나곤 하였습니다. 유 교수가 ‘세한도’를 극찬한 것은 더 말할 나위 없었습니다.‘세한도’에 얽힌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엽인 1943년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후지즈카 지카시(藤塚隣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10총선이 진보 야권의 대승, 보수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이 175석, 조국혁신당이 12석, 새로운미래와 진보당이 각 1석을 차지함으로써 야권의 의석이 모두 189석으로 전체 의석의 3분의 2에 가깝다. 반면 국민의힘-국민의미래는 108석을 차지함으로써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겨우 넘겼다. 여기에 국민의힘을 나와 독자 노선을 추구한 개혁신당 의원 3명을 합해도 111석에 불과하다.정부-여당에 실망한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는 감소한 가운데, 중도 유권자들이 야권 지지로 대거 돌아
'2021년 사망원인통계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40년째 부동의 1위인 암이며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이 그 뒤를 잇고 있다. 10년 전과 비교하여 순위가 크게 오른 폐렴(6위에서 3위)과 치매(순위권 밖에서 7위)는 고령 인구의 증가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사망 원인 상위권에 있는 질병 모두는 조기에 발견하면 사망률을 낮출 수 있으며, 영상 장비를 통해 조기 진단이 가능하여 의료용 영상 장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특히 영상 장비를 통해 질환의 위치나 크기, 모양 등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정확
한국에 스마트폰이 상륙하던 때이니 2010년경의 일이다. 이화여대동창회가 주관하는 행사가 교내 대강당에서 열렸는데, 일부 재학생들도 초대를 받았다. 행사가 끝난 후 어른 동창이 남긴 한 말씀, “요즘 학생들은 행사장에서 떠들지 않네요. 학교에서 교육을 잘하고 계신 모양입니다.”하지만 실상은 스마트폰을 코에 박고 즐기느라 바로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떠들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교정에서도 교실에서도 잘 떠들지 않는다. SNS하랴, 끊임없이 올라오는 숏폼 즐기랴, 드라마 짤영상 보랴, 온라인 게임하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
올해 주총시즌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다툼에서 특이한 사항이 하나 생겼다. 모녀와 장·차남의 싸움에서 장·차남 측이 모녀 측의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되는 두 개의 공익재단(가현문화재단, 임성기 재단)에 대해 주총 직전 의결권 행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장·차남 측은 고 임성기 회장의 뜻에 따라 설립된 공익법인이 일부 대주주(모녀 측)에 의해 개인 재산처럼 의사 결정에 활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주총 표 대결에서 완승한 장·차남 측은 경영권 분쟁에서는 마침표를 찍었으나 공익법인의
아래 사진, 텅 빈 신발장에 아이 신발 두 켤레가 아래위로 나란히 놓여 있는 거 보이나요? 우리 동네 어린이집 신발장입니다. 아직 밤이 길던, 한 달 반쯤 전, 2월 어느 날 이 신발장을 들여다봤다가 그게 지금까지 버릇이 되었습니다.나는 보통 오후 6시 무렵 아파트 관리동 지하에 있는 체육관에 내려가 이것저것 운동을 하는데, 체육관에 가려면 1층에 있는 어린이집을 지나야 합니다. (관리동 2층은 관리사무실, 3층은 경로당입니다.) 보통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곧바로 지하로 내려갔지만, 그날은 왠지 어린이집 쪽으로 눈길이 갔습니다. 어
스튜디오 촬영이나 드레스, 메이크업, ‘스드메’가 결혼식의 필수가 된 지는 오래다. 그런데 ‘퍼얼레’라니? ‘퍼얼레’는 드레스 숍에서 새 드레스를 처음 입어 보는 퍼스트 웨어, 오전 9시 이전 또는 오후 5시 이후에 메이크업을 받는 얼리 스타트와 레이트 아웃이면 추가금을 요구한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다.웨딩이란 단어만 붙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결혼식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 추가금이 붙는 게 현실이다. 음식점의 메뉴판에 가격을 표시하듯이 가격을 표시하는 결혼서비스 업체가 별로 없는데, 가격을 표시한 업체도 현장에 가면 각종 명목으
한국의 여성들은 자축할 일이 많은가? 나의 어머니는 1926년생으로 18세에 혼인하여 첫아들 출산 이후 내리 딸 다섯을 낳다가 마흔에 여섯째 딸인 나를 낳았다. 평균 자녀 수가 6명이던 1960년대에 “3.3.35운동,” 즉 3자녀를 3살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기 운동이 한창일 때 ‘이상적 가족’과 달리 아들을 낳으려 계속 출산을 시도한 어머니로서는 자녀출산이 그리 자축할 일은 못 되었다.하지만 어머니는 1948년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보장된 이후로 선거에 참여하였고,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선거 때에는 축첩제 폐지운동을 목
우리 가족은 모두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다가 딸이 태평양 건너 사랑을 찾아 떠나면서, 기억하기 쉽게 양력으로 지내온 지 10여 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제삿날과 형제들의 생일은 여전히 음력으로 지내고 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헷갈려서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나곤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모골이 송연하다.어느 해, 퇴근 후 동네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왔는데, 어째 집안 공기가 싸늘했다. 아들한테 문자를 보냈으나 답장이 없다. 딸은 시차가 있어 연락하지 못하고. 그러고 있는데 아들한테서 답이 왔다. “무슨 일 있어요?” “오늘 무
EU는 지난 3월 7일 세계 최초로 게이트 키퍼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 Digital Market Act)’을 전면 시행하였다. 애플·메타(페이스북)·알파벳(구글)·아마존·MS·바이트댄스가 사전지정 요건에 따른 규제 대상이다. 공정하고 개방된 디지털 시장 조성을 위해서 DMA는 서비스의 경쟁업체 개방, 획득 이용자 개인정보의 무분별 활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구체적으로 규제 대상 플랫폼의 자사 상품·서비스 우대, 자사 소프트웨어 끼워팔기, 개인정보 부당 이용 등을 금지한다. 위반할
경북 안동시 도산면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선생의 종택을 지켜온 종손 이근필(李根必) 옹이 지난 7일 93세로 별세(1932~2024)했다. 퇴계 종가 주인의 부음은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각계각층에서 조문을 왔고 조화를 보내왔다. 11일의 발인에는 유족과 친지, 유림 등에서 100여 명이 장례 행사에 참여해 퇴계 종택 근처 선영에 마련된 묘소까지 호송을 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다. 전국 유림에서 보내온 만장(輓章)이 가는 길을 덮었다. 종손의 타계로 퇴계종가를 지켜온 그의 생애가 재조명되었다.
봄꽃이 필 듯 말 듯한 이 시기는 이사철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모든 것이 시작하는 봄에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도 있고 2007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76%의 응답자가 가장 선호하는 이사 시기로 4월~6월을 꼽으면서 청소와 노동을 고려했을 때 너무 춥거나 덥지 않은 시기를 선호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필자가 사는 곳은 대학교가 많아 조금 빨리 2월쯤부터 신입생들이 자취를 시작하면서 이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사하는 사람의 수를 세 보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것이 평소보다 골목골목 쌓인 쓰레기의 양도 늘어
요즘 대규모 쇼핑센터는 규모가 아주 크다. 안에는 여러 개의 길이 있어 마치 시가지 내 상점가로와 비슷하고 중간에는 큰 광장도 있어 도시의 중심지를 거니는 것 같다. 건물 내는 여러 개 층을 터서 어느 층에 있어도 쉽게 다른 층이 보이고 연결되게 해 놓았다. 어떤 쇼핑센터는 중심부에 여러 층을 모두 비워 매우 높은 공간을 만들어 마치 큰 성당의 중앙 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 뜬금없이 아주 높고 큰 도서관을 들여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과 신기함을 자아낸다. 방문객이 넘치기 일쑤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곳에 그런 도서관이 개
총선을 코앞에 두고 사과값이 비싸다고 온 나라가 난리다. 소비자(유권자)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직결된 문제라 과일과 채소류 가격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뜨거운 것인데 조만간 해결책이 나올 분위기이다.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가는 것은 필자만이 아니리라. 특히 이번 겨울 감귤과 채소류 수확이 한창인 제주에서 보고 들은 것을 감안하면 여건이 녹록지 않다. 장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재배 과정과 달리 수확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농산물 가격에 노무비 상승의 영향이 크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과 같은 일견 농산품 가격과 관련이 적어 보
지난 주말 성수역 쪽에 놀러 갔을 때 10여 년 전 명동역 풍경이 기억에 스쳤다. 명동 밀리오레 인기가 한창일 때 역 앞은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깨가 닿거나 뒷발을 밟히기도 했던 복작거림이 성수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성수동은 요즘 핫플(핫플레이스의 줄임말. 인기가 많아 사람들이 몰리는 동네)이다. 유명 브랜드 매장 입구마다 대기 줄을 서고 매장 안쪽도 북새통을 이룬다.이날 탬버린즈, 조말론, 뉴믹스커피, 무비랜드, 퓌, 샤이니 키 등 최소 6곳의 팝업스토어를 방문할 심산으로 동선을 짰다. 또 성수역 앞에서 만나는 대
이달 초 ‘슈퍼 화요일’ 경선 승리로 올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리턴매치’가 사실상 확정됐다. 미국 대선 후보의 재대결은 거의 70년 만에 처음이 될 것이다. 1956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공화당 대통령은 4년 전 민주당 상대였던 애들라이 E. 스티븐슨을 다시 꺾고 재선에 승리했다.이번 선거는 미 대선 역사상 최고령 대결이 될 것이다. 바이든은 올해 81세, 트럼프는 77세로 미국인의 90%는 이들보다 젊다. 따라서 존 케네디,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에게서 선물받은 책 ‘유관순 누나’를 읽으며 마음 아파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눈시울이 뻘게지는 바람에 한참을 공부방 밖을 나가지 못했던 것도 기억합니다. 그만큼 ‘3·1운동’ 하면 ‘유관순 누나’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고등학생 시절에는 교주(校主=재단 이사장)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 선생께서 3·1절마다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앞 연단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곤 하셨습니다. 마이크나 확성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발바닥부터 시려오는 추위에